[정윤희의 미술이야기]김재홍이 그린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정윤희의 미술이야기]김재홍이 그린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 경기신문
  • 승인 2020.05.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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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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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 에세이스트
미술평론 에세이스트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은 거친 폭우와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가정의 달 5월을 절반 이상 보낸 지금, 역사가 남긴 상처로 아직 아파하는 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척인 것이다.

김재홍의 2004년 작 <아버지: 장막 1>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를 그린 그림이다.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며 누워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계신지 갈비뼈는 한껏 하늘을 향해 있고 겨드랑이와 배는 쭈글쭈글하다. 아버지의 몸을 기다란 곡선으로 횡단하고 있는 상처가 안타깝다. 아직 아물지 않았는지 상처는 벌어져 있고 혈흔은 번져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단순히 상처가 아니다. 기다란 철조망 장벽인 것이다. 아버지의 몸은 바위산이고, 기다란 철조망은 바위산 위를 구불거리며 길게 드리어져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서 2020년 기획 전시 <광장>을 통해 몇 년 만에 관객에게 선보였다. 아버지의 몸 위를 횡단하는 철조망은 단연 분단된 이 나라의 아픔을 뜻하는 바이겠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장으로서 남모를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된다. 술에 취했거나 고된 노동으로 지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홍은 이 땅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많이 그린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4년도에 완성된 <아버지 1>이란 작품은 아버지의 쭈글쭈글해진 손을 대형 화폭에 담았다. 거죽밖에 남지 않은 손이지만 대형 화폭에 담으니 장엄함이 느껴진다. 거친 살결이 이루는 굴곡진 주름들, 창백한 빛을 머금은 살결의 채색이 실로 정교하다. 매우 사실적이지만 또한 신비로운 손이다.

김재홍은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활동을 했다. 그가 작업했던 책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동강의 아이들>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장에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남매는 동강을 서성인다. 칭얼대는 동생을 달래는 일이 영 버거울 테지만 오빠는 동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업어도 준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초록빛을 띤 동강은 그저 잔잔하기만 하다.

하지만 책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로 남매가 등지고 있는 커다란 바위산의 형태가 바로 어머니의 모습인 것이다. 어떤 페이지에서 어머니는 봇짐을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향하고 계신다. 어떤 장면에서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계신다.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동생을 보고 있는 오빠를 바라보며 대견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어머니는 지금 곁에 없지만 아이들을 늘 살펴보고 지켜주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필자에게는 그림 속 여인이 어머니보다는 할머니에 더 가깝다.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자식들을 만나러 가시는 날에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담긴 커다란 봇짐을 머리에 이고 기차역까지 먼 길을 걷곤 하셨단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자식들에게는 저처럼 늘 푸근하고 넉넉하셨다 한다.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산과 초록의 동강 역시 작가는 매우 세밀하게 그렸다. 특히 두 아이의 뒤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동강의 초록빛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쩌면 그림은 실제 동강의 풍경보다 더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세밀하고 정밀한 그림이 신비한 분위기를 띨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김재홍 작가는 <동강의 아이들>을 통해 2004년 프랑스의 에스파스앙팡 상을 수상하였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들의 부모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들의 삶은 그처럼 늘 궁핍했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늘 요동치고 있었다. 나의 부모는 김재홍의 작품을 감상하며 어떠한 느낌을 가지게 될까. 아직 치유받지 못한 이들이 너무나 많은데 필자는 그들의 아픔은 이처럼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다. 오늘 한동안 내리쳤던 폭우와 번개만큼은 그 아픔을 잘 헤아렸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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