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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김종인과 기본소득제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보고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지난 3일 한 말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다. 김종인 위원장이 언급한 자유의 개념은 독일의 사회철학자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의 철학과 그 맥이 닿아있다. 슈타인은 칼 맑스와 함께 헤겔 철학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학자다. 맑스는 사회주의의 길로, 슈타인은 독일의 사회국가(Sozialstaat)의 기초를 완성한 길로 각각 나아갔지만, 둘의 뿌리는 헤겔 철학에 두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독일의 사회국가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의 사회국가는 시장경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두고 진보니, 좌파 노선이니 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김종인 위원장의 이런 발언과 기본소득제를 연결시키는 주장이 점점 늘고 있다.

기본소득제란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특정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정기적으로 국가 혹은 주정부가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를 맨 처음 시행한 곳은 인구 75만 명 규모인 미국 알래스카 주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석유 수출입으로 발생한 돈으로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설립해, 1982년부터 알래스카 주에 6개월 이상 살고 있는 모든 거주민을 대상으로, 1년에 한번 2천72달러(약 230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인구 550만 명의 핀란드는 2017년 1월 1일부터 시험적으로 임의로 선정된 실업자 2천명을 대상으로 2년 동안 매달 560유로(한화 약 70만원)을 지급했었다. 하지만 2년 동안의 시험을 마친 뒤, 핀란드는 더 이상 기본소득제를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강원도 크기정도인 스위스는 2016년에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에 참여한 국민 중 77%가 반대해 실시가 무산됐다.

이런 사례들을 언급한 이유는 이렇다. 일단 기본소득제가 전국적 차원에서 전(全)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적은 아직 없다는 점이고, 또한 인구 몇 천만 명 규모의 국가에서 실시된 적도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전국 차원의 기본소득제를 실시한다면 세계 최초인 셈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미국 알래스카 주가 실시하는 기본소득제는 1년에 한번만 지급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매달 주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 번째로, 알래스카는 기본소득제를 위한 기금을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재정확보가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 세계 경제가 뒷걸음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기본소득제 실시를 위한 안정적인 세수확보가 괴연 가능한지 의문이다. 네 번째로 주목할 점은 핀란드는 2년간의 시험 실시 후에 기본소득제 도입을 무산시켰다는 점이다. 여기서 핀란드의 복지구조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경우, 실업자가 되면 원래 받던 급여의 70%를 실업 급여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으로 70만원을 받으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로서는 복지로 나가는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실업 상태에 안주하려는 노동 인력을 노동 시장으로 빠르게 복귀시킬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핀란드는 기본소득제를 시험 실시했는데, 국민들이 이런 제도를 반길 수만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본소득제가 실시될 경우, 기존의 다른 복지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즉, 기초노령연금을 받으면서 기본소득을 또 받는 경우라든지, 아니면 다른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기본소득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제에 대해 제대로 된 개념을 가져야만 제도의 도입에 찬성 혹은 반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소득제가 반드시 좌파의 어젠다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복지 축소의 방편으로 기본소득제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국적 차원의 기본소득제 도입이 매우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주장임은 분명하다. 상대방을 당황케 하는 김종인 위원장의 마술이 이번에도 통할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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