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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의 톨스토이 회상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말년 생활을 가까이 엿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최근 국내에 번역돼 나온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우물이 있는 집刊)은 톨스토이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후배작가 막심 고리키(1868-1936)가 쓴 '말년의 톨스토이에 대한 회상기'이다. 고리키가 1900년 이후 톨스토이와 교류하며 나눴던 짤막한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고리키가 가까이서 지켜본 톨스토이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답지 않게 장사꾼이나 마차꾼처럼 냉소적이고 상스러운 말투를 잘 썼다. 게다가 얄궂은 질문으로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톨스토이는 어느날 공원에서 안톤 체호프에게 "자네 젊었을 때 오입을 많이 했었나?"라고 불쑥 물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체호프는 "지칠 줄 몰랐죠"라고 상스러운 농민의 말투로 대꾸했다.
고리키는 톨스토이가 여자에 대해 거리낌없이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말투도 점잖지 못해 기분이 상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엘리트주의를 싫어했던 그의 민중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자, 동시에 정확하고 요점에 맞는 말을 단순하게 사용하려 했던 것임을 나중에 알았다고 회고했다.
사회주의자 고리키의 눈에는 톨스토이가 "늙거나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존심에서 비롯된 굴욕감 때문"에 신에 대해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비친다. 고리키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이야기 속에는 열정도 감정도 섬광도 없다"면서 "그는 '만약 그리스도가 러시아의 한 마을에 찾아온다면 여자들은 비웃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고리키의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민중적인 것을 좋아했지만 인위적인 묘사나 무신론적 경향 등에 대해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고리키가 자신의 작품 「황소」를 읽어줬을 때 톨스토이는 "언어를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칭찬한 뒤 "그러나 자네는 한편으로 언어를 다루는 재주가 없네. 자네 이야기에 등장하는 농부들은 영리하게 말을 잘해. 그런데 실제 농부들은 바보 같고 일관성 없게 말을 하거든"이라고 작품상의 오류를 비판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와 유럽의 작가들에 대한 비평도 자주 했다. 그 중에서도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나쁜 소설'이라고 규정한 뒤 "주인공이 건강하더라도 그의 순수함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주인공을 간질병 환자로 그린 것은 자기 스스로 병이 있기 때문에 세상 모두가 병이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는 공자나 부처의 가르침에 좀더 익숙해져야 했어. 그러면 좀 진정이 되었을 텐데. 그가 반항적인 피의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해. 화의 덩어리가 갑자기 그의 대머리에 튀어오르면 그의 귀가 움직이지. 그는 많이 느꼈지만 생각은 잘 안했어"라면서 "그의 피에는 유대인 기질이 흐르고 있어. 그는 이유도 없이 의심했고 야망이 많고 둔하고 운이 없었지. 그가 그렇게 많이 읽힌다는 게 신기해. 그 이유를 모르겠어. 너무 고통스럽고 쓸모가 없어"라고 고리키에게 말했다.
이번 책의 화보와 본문에는 톨스토이의 일상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는 사진 70여컷이 들어 있다. 이 사진들은 출판사가 모스크바에서 구해온 것이라고 한다. 한은경·강완구 옮김. 232쪽. 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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