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8주년인 8월 15일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만난 김창원(82) 옹은 6·25 전쟁 당시 목숨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운 국가유공자다.
김 옹의 아버지는 1919년 3월 평북 의주군 비현면 체마 장날에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해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인 김이근 선생으로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대한민국’을 지킨 국가유공자 가문이다.
1932년 2월 6일 평안북도 의주군 피연면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았다는 김 옹은 1947년 중학교 3학년인 15살의 어린 나이로 혈혈단신으로 ‘자유 대한’으로 월남했다.
이후 발발한 6·25전쟁이 한창 격화된 1951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최전방 부대인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3사단 23연대에 입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진 김 할아버지는 “군복조차 없어 UN군이 입던 군복을 얻어 입고, 제대로 끼니조차 챙겨먹지 못해 고구마를 훔쳐 먹었다”며 “전쟁 중이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어 졸음과 배고픔 속에 목숨걸고 싸웠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전쟁당시 청각을 잃어 1952년 2월 전역 후 지금까지도 보청기 없이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며 “통일을 이루지 못해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께도 늘 죄송스런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12년째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없이 하늘 나라로 갈 수 있게 함께 하는 호스피스의 삶을 살고 있다”는 김 옹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는 일이 봉사랄 것도 없지만 무엇보다 보람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옹은 “내 아버지는 조국을 찾았지만 고향도 버리고 떠나온 나는 통일도 못 시킨 죄인밖에 안된다”며 “또 다시 광복절을 맞지만 통일이 돼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나 국민들께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인만큼 하루빨리 통일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