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수파리(守破離), 지키고 깨고 그리고 떠나라

2014.11.02 20:46:26 인천 1면

 

무예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서 스승의 존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스승의 실력이 제자의 실력을 가름할 수 있기에 대충 10년을 수련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스승을 찾아 9년을 허비한다 하더라도 1년을 충실히 배운다면 오히려 더 효과적인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존경어린 명언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게 스승의 가르침을 맹신하고 추종한다면 자신의 발전은 오히려 늦어질 수도 있다.

일본의 선불교에서 깨우침을 말할 때 수파리(守破離)라는 명제가 있다. 이후 이것을 칼을 쓰는 사람들이 차용해서 검술수련의 방법론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먼저 첫 번째 단계인 ‘수(守)’는 ‘가르침을 지킨다’는 뜻으로 스승에게 배운 기본을 철저하게 연마하는 단계다. 여기에는 수천수만 번의 동일한 동작의 반복을 통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단계를 말한다. 이것이 무예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두 번째 ‘파(破)’는 ‘가르침을 깨뜨린다’는 뜻으로 스승에게 배운 원칙과 기본기를 자신의 몸에 맞게 독창적인 응용 기술로 창조하는 단계를 말한다. 스승과 신체구조가 동일하지도 않고, 기질이나 힘의 차이라는 물리적인 차이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깨뜨림은 이뤄진다. 마지막 단계인 ‘리(離)’는 스승에게 배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무예의 세계로 출발하는 단계를 말한다. 만약 스승보다 제자의 실력이 뛰어난 청출어람(靑出於藍)형의 제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떠남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 수파리의 문제는 단순히 스승에게 모든 것을 배운 이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가르쳐준 기술 한 가지 한 가지를 몸에 익히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초급과정에서부터 중급 그리고 고급과정까지 쉼 없이 반복적으로 ‘수파리’는 일어난다. 만약 그것을 수련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그런데 우리 무예계에서는 수파리로 보자면 두 가지의 문제가 쉼 없이 제기된다. 첫 번째가 전통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이기에 지나치게 ‘수(守)’를 강조하여 스승에게 영원한 복종을 강요하는 모습이다. 본래 강을 건너면 배는 버리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 제자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좋은 스승을 찾아 또 다른 수파리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첫 스승은 그 떠남을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하는데, 마치 자신이 버림받은 듯한 입장을 취하고 제자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그 스승 또한 또 다른 수파리를 수행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배움의 관계는 가르침이 아니라 집착이다.

반대로 제대로 지키지도(守) 깨뜨리지도(破) 못한 실력인데 자기 잘난 맛으로 스승을 떠나(離) 새로운 문파를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로 인해 앞에서 이야기한 전통성을 강조한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스승께 배운 기본기로 얼렁뚱땅 투로를 만들거나 이름만 거창한 새로운 oo협회를 만들어 자신이 대장 짓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남의 나라 무예를 바탕으로 수련했지만, 전통관련 서적을 읽고 그 움직임을 덧씌워 한국의 전통무예라 설파하는 식의 사기꾼적 행태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수파리’에 대한 부분은 단순히 무예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쉼 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아이들은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수파리를 경험하고 학교에 들어서면 선생님을 통해서 수파리를 경험하게 된다. 이후 사회에 나오면 자신이 인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직장의 상사나 이웃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수파리는 쉼 없이 반복된다.

우리의 인생에서 완성체는 없다. 영원한 미완성의 상태가 인생인 것이다. 오직 그 단계와 단계 그리고 순간과 순간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인 몸짓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수파리에서의 반복은 늘 똑같은 반복이 아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 그리고 오늘의 ‘나’를 넘어서는 내일의 ‘나’를 꿈꾸기에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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