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창] 안보성곽 허물기와 "시일야 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

2020.12.22 06:00:00 13면

 

그토록 우려하던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무력화가 현실화되었다. 스스로 안보성곽을 허무는 자해를 목도하면서 “시일야 방성대곡 (是日也放聲大哭)”을 떠올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을사5적을 규탄한 내용이다. 장지연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무도한 시대의 흐름을 막지 못했듯이 국가를 사랑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충심어린 반대가 모기소리 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대공수사권 폐지가 갖는 법률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인간 심성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심성 측면에 맞추어 모기소리라도 내고자 한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간첩과 이적행위 등 반국가범죄 수사에 가능 유능한 기관을 사실상 없애는 것과 같다.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복수심 때문인가, 사적 원한 때문인가. 설사 과거 좋지 않은 감정과 경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위치가 되었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이를 실천하지 않았나. 국정원법 개정안 처리과정에서 제대로 된 공청회나 토론회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민주정치·토론정치를 소리 높여 외친 이른바 촛불정부가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튼튼한 군사력과 안보 수호 정신이 뭉쳐있을 때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확인해 볼 것도 없이 김정은은 평양에서 함박웃음을 터트리고 있을 것이다. 지난 60여 년간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가로막는 남한의 법과 제도 폐지를 집요하게 추구해 온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니까. 다음으로 찬양 · 고무죄와 이적단체 처벌 등을 규정한 국가보안법 7조도 폐지하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젠가 이루어지면 핵무기를 바탕으로 남한을 집어먹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성적 구호도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민족이 어찌 간첩일 수 있을까라는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적지 않게 펴져 있다.

 

또 그렇게 하면 뭐 그리 문제가 되는가 라는 인식도 만만치 않게 형성되어가고 있다. 체제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우리의 방패를 스스로 내려놓아도 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수백 번을 생각해도 김정은 정권은 병법서 ‘36계’에도 나오는 소리장도(笑裏藏刀)정권이다. 웃음 속에 날카롭게 벼린 칼을 감추고 있는 정권이다. 그런데도 집권층은 애써 그 칼이 없다고 외면한다. 겉으로 춤추는, 평화롭게 보이는 장면만 연출한다. 북한이 그렇게 착한 집단이던가. 정보기관은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막이다. 99%가 희다고 주장해도 붉은 색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국가의 안보와 안위를 위해 촉수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국정원이 과거의 원죄를 빌미로 고유기능을 망가뜨리는 것은 국가안보에 두고두고 후환을 초래할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

 

한편으로 국가정보원 요원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간 ▲대공 수사과정에서 법절차를 얼마나 잘 준수했는지,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는지, ▲목숨을 바칠 각오로 전문성을 함양했는지, ▲알량한 권력에 취해 어깨에 힘주고 다녀 시기심을 유발하지는 않았는지, ▲주는 봉급이나 받아먹는 오렌지족이 되지 않았는지 등이다. 한 때 국가정보원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기관이었다. 그런 기관이 지금 왜 ‘동네국정원’ ‘남북대화기관’‘치맥과 같은 생활정보나 올리는,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기관’이란 오명을 쓰고 있는지도 되돌아 봐야 한다. 해고되거나 인사불이익이 두려워 내부 요원 어느 누구도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 현실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밥그릇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이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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