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신문의 날’…다양한 소식 전하는 건강한 독자의 눈과 귀 역할

2021.04.06 17:14:05 11면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올해 65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소식이나 견문을 전한다는 의미의 신문(新聞)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신문의 날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호를 찍은 1896년 4월 7일을 기려 언론계가 제정했다.

 

1957년 4월 7일 창립된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독립신문’ 창간 61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신문윤리강령을 선포했다. 이후 언론계는 이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선언문과 그 해의 행동지표로 표어를 제정,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독립신문을 발간한 서재필은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 등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 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의사가 됐다. 미국으로 귀화한 그는 일시 귀국해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했다.

 

18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은 창간 당시 가로 22cm, 세로 33cm의 타블로이드판 크기 4면으로 구성됐으며, 1~3면까지는 국문판, 4면은 영문판으로 편집해 주 3회 격일간지로 발행됐다.

 

신문의 논조는 주로 국민 계몽이었고, 그해 7월 독립신문의 지지 아래 독립협회가 결성됐으나 개혁파와 집권 친러 수구파 간에 대립이 깊어지면서 탄압이 시작됐고, 서재필은 결국 1898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윤치호가 물려받았으나 정부의 탄압은 이어졌고, 그는 1899년 덕원 부사 겸 원산 감리라는 직을 맡아 서울을 떠나게 됐다. 정부는 사옥 반환 요구에 이어 독립신문사를 매수, ‘독립신문’은 끝내 1899년 12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정부가 발행한 국내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 뒤를 잇는 ‘독립신문’은 짧은 기간 존속했지만 개화기 사회발전과 민중계몽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자유와 품위 등을 강조하기 위한 신문의 날.

 

역대 신문의 날 표어를 보면 이 사회에서 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1959년 제3회에는 ‘언론의 자유’, 1966년 제10회에는 ‘신문의 긍지’, 1976년 제20회에는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이 선정됐다. 제50회였던 2006년 당시엔 ‘언론도약의 반세기 독자와 함께 미래로’가, 제60회 2016년에는 ‘시대보다 한발 먼저, 독자에게 한걸음 더’가 대상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1993년에는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인 87.8%가 종이신문을 이용했고, 2010년에는 절반인 52.6%가 종이신문을 읽었다. 지난해 열독률은 10.2%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PC 인터넷 뉴스가 늘어난 상황임에도 PC를 통한 신문 기사 열독률은 6.3%p나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65회 신문의 날 표어 대상에 선정된 ‘신문이 말하는 진실은 검색창보다 깊습니다’라는 의미처럼 신문은 분명, 건강한 독자의 눈과 귀가 돼 다양한 소식을 진실하고 공정하게 담아내기 위한 역할로서 필요하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

신연경 기자 shinyk@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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