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칼럼] 갓 구운 신문의 추억

2021.05.31 06:00:00 13면

 

 

1.

1999년에 부산에 왔다. 오랫동안 집에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두 가지를 구독했다. 종이신문 전성기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의무감이 컸다. 부산 하고도 해운대에는 두 신문의 독립지국이 없었다. 동아일보 지국에서인가 위탁배달을 했다.

 

밀림처럼 고층아파트가 빽빽한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한겨레나 경향 받아보는 집이 100 곳도 안 된다는 한탄 같은 한숨을 (일찌감치 안면을 튼) 지국장한테서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침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신문을 펼치면 훅 풍겨오는 잉크냄새가 좋았다.

 

물론 더 좋은 건 예기(銳氣)로 번쩍이는 헤드라인과 지사적 풍모가 물씬한 칼럼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일이었다. 대학교수가 비교적 자유로운 게 출근시간이다. 그렇게 술렁술렁 신문을 넘기는 것이 하루를 여는 나의 즐거움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신문산업을 둘러싼 미디어생태계가 눈이 휙휙 돌 정도의 속도로 급변했다. 종이신문의 퇴조는 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쓸쓸하고 아픈 것은) 두 신문의 성격 자체가 크게 변질했다는 게다.

 

몇 년 전에 한겨레를 절독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는 결국 경향까지 끊었다. 명실상부 진보언론을 대표하는 두 신문에서 풍기는, 상해가는 생선 냄새 같은 비릿함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집에 배달되는 종이매체는 주간 가톨릭신문과 시사인 뿐이다.

 

2.

한겨레와 경향이 변질된 징표는 두 신문사 내부의 선후배 질서가 무너지는 것에서 가장 뚜렷하다. 심층보도를 위한 구성원 조직력이 다른 어느 매체보다 긴요한 것이 신문 미디어의 특성. 끈끈한 의리와 도제식 실무 습득 시스템이야말로, 16세기 초엽 유럽에서 태동한 이 미디어를 '언론의 제왕'으로 만든 원초적 힘이었다.

 

그런 '건강한 위계'가 먼저 허물어진 것은 경향이었다. 사원주주제라는 자본구성 특성에 더해 주인 없는 신문이란 환경이 와해를 가속화시켰다. 이 신문의 데스크 급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전해들은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신문사 내 세대갈등과 가치관 충돌이 도를 넘었다는 게다. 위도 아래도 없어지고 선배도 후배도 없이 갈래갈래 찢어진 양상으로 내게는 이해되었다. 이른바 자정기능을 상실한 게다.

 

상대적으로 선후배 관계 전통이 남아있는 한겨레의 경우도 구성원 갈등이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다. 올해 초 한겨레신문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 라는 제목의 글이 그것이다. 내부자적 관점에서 이 신문의 현재적 상태를 배를 가르고 내장을 보여주듯 선연히 드러낸 증거였다.

 

글을 쓴 이는 예를 들어 "검찰개혁의 해석과 방향성"을 둘러싸고 데스크와 편집위원회의 리더십을 공격하는 회사 내 젊은 후배들의 태도를 지적했다. 조직 내 세대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핵심적 대목을 하나만 옮기면 이렇다.

 

"'한겨레'는 보수보다 진보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진보 성향의 매체입니다. 여러분이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도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한겨레'에서 일하기보다 '한국일보'처럼 중도적인 성향의 매체로 옮기기를 권합니다."

 

3.

나는 양대 신문사 내부의 이 같은 가치관 충돌이, 결국 지금 두 신문의 퇴락과 변질에 핵심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진보언론사 내부에서 이런 갈등이 이른바 조·중·동에 비해 더욱 격심하고 표면적으로 터져 나오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나는 '젊은' 기자들의 시대적, 계급적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조·중·동 떨어지면 한겨레와 경향 간다"는 비아냥이 그냥 비아냥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이들의 세계관 자체가 기존 진보언론들이 지녀왔던 내재적 틀과 충돌하는 것이다.

 

앞서의 데스크 급 기자가 들려준 충격적 일화가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휘하의 '나름 잘 나가는' 젊은 기자가 언론사 기자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을 만났다는 게다. 순수한 눈망울 반짝이며 "어떻게 하면 큰 신문방송의 기자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해당 기자가 이렇게 답했다는 거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무슨 수를 써서든 스카이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학생운동이 퇴조하고 돈과 권력의 성공 신화가 캠퍼스를 휩쓴 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세상의 기초가 환골탈태 속물화되었는데 그 젊은 기자를 어찌 무조건 욕할 수만 있겠는가 이 말이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주요 언론사 기자를 목표하는 학생들이 세상의 심층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치열하고 전생적인 고민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다는 것. 그런 비판의식과 투신적(投身的) 사명감을 벼리는 대신에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지식 익히는데 공부 시간을 온통 소비하고 있다는 것.

 

의과대학과 로스쿨 정원을 강남 3구 출신들이 차곡차곡 채워간다는 말이 있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끊기고 부와 직업의 세습적 대물림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구조적 귀결이 언론사 기자 수급에서도 서서히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게다. 그 같은 인과관계를 누가 확고히 부인할 수 있겠는가.

 

4.

이쯤 왔으니 솔직한 내 마음을 밝히고 싶다. 나는 집에 배달되는 종교 신문과 시사주간지 만으로는 진보적 뉴스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한겨레와 경향이 이른 아침 "투둑!"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앞에 떨어지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그 강건하고 신선한 '갓 구운' 신문의 냄새를 맡고 싶다.

 

하지만 어찌하련가. 죽을 때까지 그런 날은 영영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나의 곁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으니.

 

p.s) 신문 칼럼에서 다른 특정 언론을 주제로 삼는 것은 일종의 실례일 수 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 관련 이슈는 단순한 개별 신문사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언론지형의 방향성을 조망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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