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창]급작스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새로운 미션스페이스

2021.07.20 06:00:00 13면

 

 

지난 6월 29일 평양 노동당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는 대선 열기가 뿜어 나오는 와중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중대사건’ ‘간부혁명’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 행위’ 등 과 같은 무거운 용어들은 북한의 권력층 내부에 심상찮은 변화가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 시그널은 공개된 확대회의 장면이다. 최상건 비서 겸 과학교육부장의 자리는 비워있었으며 리병철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은 거수 장면에서 손을 들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7월 8일 김일성 27주기 참배식에도 최상건은 보이지 않았고, 리병철 부위원장은 군복이 아닌 인민복을 입고 3열로 밀려났으며, 박정천 총참모장은 원수에서 차수로 강등된 것이 확인되었다. 김 씨 일가의 전통적 엘리트 통제 수법인 ‘강등과 복권’ 전술을 적용한 셈이다.

 

철직 당하면 할 것도 없고 대체재도 없는 북한에서 엘리트들의 ‘강등과 복권’ 전술은 매우 유요한 통제 수법이다. 리병철은 일단 코로나 방역과 관련한 내용을 자기 선에서 뭉갠 것이 원인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리병철의 생각은 김정은의 근심을 들어주고자 보고하지 않았는데, 코로나 방역 문제를 국가비상방역전으로 인식하는 김정은의 진노를 샀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병철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 그리고 김정관 국방상은 모두 군부인사로 방역의 직접적인 책임자가 아니다. 국정원은 6월 8일 전시비축물자 공급 지연 및 관리실태 부실문제가 '중대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전시물자를 관리하는 기구가 별도로 있는 만큼, 군부대 등에 제공해야 할 물자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울러 일부 연구기관들은 ’중대사건‘을 놓고 인민생활과 경제문제로 분석하고 있으나,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유는 장기적인 대북제재와 국경봉쇄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집단은 인민이 아니라 간부들이다. 중국에서 밀무역 등으로 들어오는 ’미원‘(북한에서는 “맛내기’) 등이 급감하면서 이들 자본주의적 식생활에 길들여진 간부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원은 가격이 폭등하여 장마당에서 우리 돈으로 1봉지당 8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생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변칙적으로 생활하는 방식에 익숙하여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풍족하진 못하지만 ‘고난의 행군’과 같은 경제난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통치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로 ‘경제난’을 제시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국식 경제이론이 부합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함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외화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평양 주재 외국 기관들을 추방하면서도 프랑스 등의 자선단체들이 제공하려는 외화를 변칙적으로 반입하기 위해 유럽공항 통과 묘술(?)도 고안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김정은의 외화난에 숨통을 틔워주는 곳이 동북 3성에 나가 있는 북한 근로자들이다. 중국이 코로나로 인해 동남아 등에 발주하는 생산 물량을 북한 근로자들이 대거 취업하고 있는 곳으로 돌렸고, 이에 따라 1인당 임금을 중국 돈 1000위안(약 180만 원)을 올려주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돈은 북한 내부로 유입될 수밖에 없으며, 김정은의 숨통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사안들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자력갱생과 동원메커니즘을 신봉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은 지금 인민 보다 간부들의 고통이 더 큰 상황이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메시지는 간부들의 동요를 유발하게 된다. 이는 정보기관이 집중해야 할 새로운 임무 공간(mission space)인 것이다. ‘과거사조사원’으로 전락한 국정원의 분발을 촉구한다.

 

이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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