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지옥의 선물, 스탄 게츠의 색소폰

2021.08.17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낳은 월드뮤직 10

 

 

 

얼마 전 취재 때문에 나태주 시인을 만났는데 ‘어떤 존재가 시인이 되는가. 시 없이 무탈하게 사는 삶, 지옥을 살더라도 시 쓰는 삶 중 택하라면 기꺼이 후 선택을 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지옥을 살아봐야 한다’는 말로도 들렸다.

 

실제 문인, 예술가 중 오체투지하듯 산 이들 가운데 ‘문학과 예술의 소재, 성찰이 삶의 지옥에서 빚진 게 많아 통과의례라 생각한다’ 라거나 ‘다시 태어나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같은 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예술가를 많이 만났다. 그들처럼 예술의 피와 끼가 없는 나는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기에 지옥마저 껴안는가’라는 의문을 더하곤 했다.

 

스탄 게츠(Stan Gets 1927-1991)를 소개하려고 꺼낸 이야기다.

브라질 보사노바 음악을 이야기할 때 작곡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1927-1994)과 함께 세트로 나오는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20여 년 전, 친구 작업실에서였다. FM 라디오에서 재즈가 흐르고 있었는데 색소폰 소리 하나가 훅 들어왔다. 들으면 담박 아는 명곡 서머타임(Summertime).

미국 조지 거슈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노래 중 하나로 엘라 피츠제널드나 빌리 홀리데이, 루이 암스트롱 등의 목소리로 즐겨 들었었다. 

 

악기가 인간의 목소리보다 더 많은 감정을 내다니!

연주자가 누구냐고 묻는 내게 재즈광 친구가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잘생긴 외모 덕에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린다. 학교 다닐 때 전과목 우수생이었는데 음악에 미쳐 열다섯 나이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 10대 때 이미 이름이 났다.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가 된 건 60년대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와 함께 낸 Jazz Samba의 대히트, 이어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함께 만든 앨범‘Gets/Gillbero’가 그래미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명곡이 되면 서다 등등.....

 

그 당시 관악기 연주회를 가면 졸기 일쑤였던 나는 그날로 스탄 게츠의 팬이 됐고 서머타임은 노래곡이 아닌 연주곡으로 바뀌었다.  그의 색소폰 연주는 숨소리나 심장, 맥박소리처럼 들린다. 노력해서 낼 수 없는 소리고 젊은 나이에 내기 힘든 소리다. 그 소리를 내기 위해 그의 인생은 어떤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는가.

 

일찍이 음악 재능을 보였지만 악기 하나 손에 쥐기 힘들었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음악에 빠져 고등학교 중퇴, 20대에 마약 중독으로 인한 감옥 생활, 자살 시도, 폭력 성향으로 인한 가족 불화, 이혼, 암투병 끝에 64세 나이로 생을 마침. 

 

그의 색소폰 소리는 그같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제물로 바친 대가였을까.

다시 태어난다면 스탄 게츠는 저 지옥을 품은 음악인생을 선택할까.

 

그에 대한 답을 나는 유작이 된, 암 투병 중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올랐던 덴마크 코펜하겐 공연 녹음 음반 ‘Stan Gets-Kenny Barron/People Time’에서 들었다.

 

말기암의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가 그와 색소폰 소리를 끌어내리는 게 느껴지는데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생전에 낸 150장 넘는 그 어느 음반보다 완벽하게 들린다. 왜 예술이 삶도 죽음도 초월하는 것인지 알겠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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