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흑인이 되고 싶었던 백인 가수 살리프 케이타

2021.08.30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낳은 월드뮤직 12

 

옛날 아프리카의 한 왕국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받던 산파는 아이를 떨어뜨릴 뻔합니다. 흑인의 나라에서 태어난 하얀 피부의 아이. 백인보다 더 희디흰 피부였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숨겨서 키우기로 합니다. 왕국에서 ‘하얀 피부 인간’은 저주였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얀 피부 인간의 신체, 혹 신체 일부를 지니면 돈과 행운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문 사냥꾼들이 돌아다니며 하얀 피부 인간을 납치해 주술사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주술사는 주술의식 후 시체를 잘라 팔았습니다.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숨겨 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저주는 계속됩니다. 아이는 피부뿐 아니라 털까지 하얀색이었는데 눈동자마저 하얗게 변하더니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글을 읽기 힘들게 되자 여러 악기들을 갖고 놀게 된 아이. 어느 날 아이는 부모에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눈물 마를 날 없었던 부모는 아이의 손에서 모든 악기를 빼앗습니다. 왕국에서 가수는 천민이나 하는 짓이었습니다. 설사 가수가 되더라도 왕국 밖으로 나간 알비노를 기다리는 것은 납치에 의한 불구, 혹은 죽음뿐일 테니까. 숨어 자라던 아이, 친구도 없던 아이는 악기를 빼앗기자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느 날 아이가 사라집니다. 아이의 방에는 가수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편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잔혹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당신.

꾸밈은 있지만 실제 이야기다.

이야기 속 나라는 아프리카 서부 내륙, 말리(Republic Of Mali)고 하얀 피부 인간은 실제 13세기에 말리 제국을 세운 순자타 케이타의 직계 후손, 살리프 케이타(Salif Keita).

 

그의 별난 하얀 피부는 알비노(albino)라 칭하는 선천성 색소 결핍증으로 유전질환이다. 실제로 가수가 되고 싶어 집을 나가 프랑스로 간 살리프 케이타는 하얀 피부의 저주를 딛고 꿈을 이룬다. 작사, 작곡까지 하는 싱어 송 라이터 살리프 케이타의 재능은 2002년 앨범 Moffou에서 빛을 발한다. 전곡을 그가 만들었다.

 

이 앨범은 무명의 그를 ‘말리의 황금 목소리 ’라 불리게 했고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린다.

‘Yamore’라는 곡을 들어보라.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 이 세상에 더는 없을 목소리를 들어보라. 알비노로서 탄생이 저주였고, 시력감퇴로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갔으나 무일푼 떠돌이로 쉰 넘어까지 살던 그가 어떻게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 담박 느끼게 될 것이다.

지하 수 천 미터에서 끌어올린 듯한 깊은 목소리의 정서에 나는 슬픔, 고독, 고통 같은 상투어를 붙여 훼손하고 싶지 않다.

 

천형 알비노 얼굴을 오히려 빛나게,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그 목소리에 경배.

그런 그가 3년 전, 돌연 가수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 같은 알비노들을 돕기 위해 2006년 살리프 케이타 국제 제단(Salif Keita Giobal Foundation)을 만들어 지원해 온 그는 2018년 5월, 발생한 ‘라마타 디아라 사건’ 이후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 품에 잠자던 다섯 살 알비노 아이는 갑작스레 나타난 알비노 사냥꾼에 의해 끌려가 선거철 제물로 목 잘린 채 발견되었다. 살리프 케이타는 남은 인생을 알비노의 비극을 막는데 쓰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새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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