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코끼리’는 만지지 마

2021.09.29 06:00:00 13면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摸象)이란 우화가 있어요. 바로 ‘장님(시각장애자)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죠.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장님들을 불러서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어떤지 말하라고 시켰답니다. 그러자 코끼리의 상아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무같이 생겼다”고 말하고, 귀를 만진 이는 “곡식을 까불 때 쓰는 키같이 생겼다”고 했어요. 다리를 만진 사람이 나서서 “다 틀렸다. 코끼리는 커다란 절굿공이같이 생겼다”고 우겼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굵은 밧줄처럼 생겼다”고 주장했죠.

 

정치권이 내년 3월로 예정된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끈 달아오르고 있네요. 주기적으로 인물을 놓고 견줘볼 수도 있고, 정책을 두고 따따부따도 할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 국민의 특권이죠. 선거철만 되면 이런저런 부정적인 평가나 불만이 쏟아지고, 지역과 혈연, 지연을 중심으로 갈등도 심화하므로 부아가 치밀 때도 없진 않아요. 그러나 어쨌든 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생각과 말과 살아온 날들을 뜯어보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여야의 당내 경선이 치열한 작금의 정치권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짜증이 납니다. 후보들은 자기의 면모를 정직하게 보여주려는 노력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일에 정력을 더 쓰는 것 같아요. 유치한 머릿수 싸움의 결과로 꾸려진 캠프들 활동은 더 한심해요. 온종일 경쟁자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궁리만 하면서, 억지 주장을 생산해 궤변 화력전을 꾀하고 있어요.

 

굳이 빗대자면 관광객의 눈을 가린 채 끌고 가서 코끼리의 특정 부위만을 만지게 한 다음 사이비종교 맹신자로 만들어 보려는 ‘악질 코끼리 관광’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에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 행태가 가관이네요. 자기의 장점은 부풀리고, 상대방의 약점은 사정없이 물어뜯고 과장하여 ‘죽일 놈’ 만들기에 여념이 없어요.

 

대장동 개발 문제로 세상이 한창 시끄럽더니, 여아 가릴 것 없이 모두 진흙탕 늪으로 굴러 들어가는 양상이네요. 4000억짜리 사상 최대의 로또네, 50억짜리 일확천금의 퇴직금이네, 서민들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돈벼락 이야기가 흐드러지면서 안 그래도 삶이 팍팍한 국민에게 절망폭탄을 던지고 있군요.

 

이렇게 하고서야 무슨 수로 제대로 된 나라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까요? 선택의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우리는 또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능력 있는,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을 골라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발 정치 협잡꾼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코끼리를 함부로 만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속아서 끌려가 만진 코끼리의 모습을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진짜 코끼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코끼리는 제발 만지지 마세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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