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윤의 좌충우돌] 신(神)과의 게임

2021.11.08 06:00:00 13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떠날 거라 했다. 서른세 살에는 미치지 않으면 자살하게 될 운명이라 했다. 인도 뉴델리 파하르간즈 골목에서 만난 예언자라는 이의 말이었다.

 

스무 해 전, 나는 한국을 떠났다. 중국에서 터키까지 두 해에 걸쳐 길 위에서의 삶을 살았다. 사랑하던 이를 잃고 힘겨운 마음으로 견디던 여정(旅程)이었다. 그 한 복판에서 듣게 된 끔찍한 예언이었다. 탁류(濁流)에 휩쓸려 깊고 어두운 강 아래로 내가 가라앉는 일시정지 화면이었다.

 

화가 치밀어 좌충우돌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탔다.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했다. 사흘 밤낮 의자에 꼿꼿이 앉아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히말라야 산맥 해발 2천 미터 고도에 위치한 마날리였다.

 

해가 저물기도 전인데 버스는 끊겼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했다. 더군다나 알고 보니 온천 마을.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않는 자학 프로그램”이 버스 끊긴 산속 온천 마을에서 자동 종료될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고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무작정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며칠을 굶어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사과나무의 탐스러운 열매에 눈길조차 주지 않을 만큼 가혹한 신(神)에게 분노했다.

 

산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들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미치지 않으면 자살할 운명이니 지금 죽으나 서른세 살 때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삶에 미련이 없으니 죽음에 두려움도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걷는 건지 허우적대는 건지 감각마저 희미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어떤 여자가 피리를 불며 내게로 걸어왔다. 울창한 전나무 숲 사이로 신비로운 음률이 감돌았다. 일본인이었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인도 마날리 산중에 피리 부는 일본인이라니!’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녀는 환상도 망각도 아닌 실체, 히피였다. 나처럼 20대에 고향 일본을 떠나 떠돌다 그곳에 정착한 여행자였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몹쓸 운명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깔 웃다가 이윽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살면서 네게 게임을 걸어올 거야. 그럴 때마다 피하지 말고 즐겨. 신(神)조차 마찬가지야. 시련과 고통, 운명으로 너에게 게임을 걸지. 도망가지 마. 신과 게임을 해. 이길 수 있어. 너는 신(神)이 가진 패를 이미 알고 있잖아?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미치지 않고 자살하지 않으면 돼. 그러면 너는 신(神)을 이기는 거야.”

 

그렇다. 신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법이었다.

 

‘미치지 말자. 자살하지 말자. 운명이 예고한 서른세 살을 넘기자. 신(神)과의 게임에서 이기는 거야.’ 관에 누운 시체처럼 지내던 나는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서른셋까지 앞으로 남은 7년, 정신줄을 단단히 붙들어 매자 다짐했다.

 

이후로도 여전히 눈을 감으면 탁류(濁流)에 휩쓸린 채 가라앉는 내가 보였다. 하지만 더는 그때의 일시정지 화면은 아니었다.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바닥까지 가겠지. 그래. 그땐 바닥을 “탁” 되짚으면 돼. 그 반동으로 위로 올라가는 거야’

 

바닥을 짚고 수면을 향해 떠오르는 내가 보였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려는 의지도 생겼다

박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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