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윤의 좌충우돌] 1루피의 기적

2021.11.16 06:00:00 13면

 

 

 

꽃 속이 따뜻하다.

너무 아프면 세상이 다 꽃으로 보여

천지간 온통 꽃 아닌 것 없으니

/이승희, 푸른 연꽃

 

 

인적 드문 사막에 숙소를 잡고 매일 느린 걸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면 브라만 사원이 나왔다. 거기서부터 작은 사원과 신전, 상점이 즐비한 바자르가 이어졌다. 사원 주변에는 걸인들이 우글거렸다.

 

인도 전통의학 아유르베다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해독요법인 ‘판차카르마(Panchakarma)’에 참여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머물던 푸쉬카르는 “푸른 연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었다. 생명의 여신 사비트리와 지혜의 여신 가야트리가 지키는 사막의 성지라고 한다.

 

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무기력과 우울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몸과 영혼이 길거리 걸인들처럼 누더기였다.

 

어느 날 기도를 드리고 나오다 한 사람에게 돈을 주니 그걸 본 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자기한테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심지어 "쟤는 주면서 나는 왜 안주냐? 공평하지 않다"며 따지는 걸인도 있었다. 그들은 ‘나는 너에게 선(善)을 쌓을 기회를 주는 거야’라는 듯 당당했다.

 

구걸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최소한의 돈을 준다. 그런 적선 행위를 비판하는 이도 있다. 한 푼 두 푼 구걸해 살아가다 보면 자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내가 돈을 주는 까닭은 그이가 내민 손이 부끄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어렵사리 손을 내밀었는데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외롭겠다 싶어서다.

 

“비록 당신 삶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당신이 내민 손은 잡아 주겠습니다.”

 

그게 내가 정한 나의 도덕률이었다. 그날, 내가 거리를 걷는 동안 만나게 될 걸인이 얼마쯤 될까 생각해보았다. 어림잡아 50명은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동전이 가득 든 지갑을 챙겼다. 사실 1루피는 인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돈이었다. 짜이 한 잔이 3루피였으니 한 모금 짜이 값도 안 되는 푼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순 없으나 그저 손잡듯 주기에 부끄럽지 않은 1루피를 건넸다. 사원과 바자르를 걸으며 만나는 걸인들마다 동전을 나눠 주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루피를 건네면 그들은 내게 꽃을 주었다. 꽃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어주는 이도 있었다. 꽃을 손에 쥐어주며 내 이마에 입맞춤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오길 기다렸다가 쥐어주는 들꽃으로 거리 산책을 마치면 꽃이 한가득이었다. 내 몸과 영혼의 누더기가 벗겨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현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꽃으로 만다라를 그렸다. 고즈넉한 마당에 핀 채송화 같았다. 풍경은 꽃 속처럼 따뜻했다.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판차카르마를 마치고 푸쉬카르를 떠날 때 내 상처는 꽤 많이 아물었다. 1루피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아유르베다는 길 위에 있었다.

박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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