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만약(If)’이 ‘만병(萬病)’ 됐다

2021.11.24 06:00:00 13면

 

정치가 사법부, 그것도 검경 밑으로 스스로 기어서 들어가는 꼴은 어제오늘의 참상이 아니지요. 여야가 전방위적으로 소통하여 난해한 국가적 이슈를 풀어가는 ‘멋진 정치’의 낭만이 있던 시대는 사라진 지 오래예요. 의사당에서 삿대질하면서 싸우는 것, 방송에 나와서 온갖 궤변 동원하여 시종일관 똑같은 주장만 펼치면서 시청자에게 고구마를 먹이는 것 말고 여야 정치인들은 도무지 소통을 안 해요. 오로지 밤낮 저질 청백전만 벌이죠.

 

날로 가열되고 있는 대선전이 드디어 특검(특별검사) 도입을 놓고 벌이는 새로운 막장극 국면으로 접어들었군요.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과 대장동 문제를 놓고 ‘쌍 특검’이니 뭐니 희한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하고 있네요. 정치권 논쟁이 고소·고발전으로 비약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유치한 공방전만 하염없이 벌이던 관성이 드디어 대선판으로 옮겨 붙은 건가요? ‘특검 대선’이라니, 보다보다 참 별 얄궂은 선거를 다 겪게 됐네요.

 

선거가 철저하게 네거티브 격투기 형태를 띠면서 등장빈도가 높아진 ‘만약에(If)’라는 가정법 종속접속사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상대방에 관한 털끝만 한 의혹만 생겨도 그걸 침소봉대하여 ‘만약에’를 앞에 붙여 찔러 물은 다음 범법자로 몰아 때리는 유치한 전법이 활개를 치는군요. ‘아니면 말고’ 식 선동술의 최신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만약에’라는 말만 붙이면 무슨 말이라도 해도 되는 것처럼 갈수록 난장판을 만들고 있군요. 여야 거대정당의 당내경선에서부터 이 치졸한 공세는 이미 펼쳐졌어요. “만약에 지금 나돌고 있는 의혹들이 사실이면 사퇴할 용의가 있느냐”고 마구 쪼아대더라고요. 팬덤정치가 키워낸 확증편향 돌연변이들이 창궐하는 정치지형의 퇴보 현상 여파예요.

 

그나마 일정 수준의 믿을만한 ‘증거’나 ‘증언’을 근거 삼아 펼치던 대통령 선거 공방전이 세월이 갈수록 형편없는 저질 난투극으로 퇴행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와요. 벌써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次惡)’을 뽑는 대선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도는 것을 보면 서글픈 마음이 드네요. 어쩌다가 우리 정치판이 이런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까요? 우리 유권자들은 잘했는데, 오로지 정치인들만이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걸까요?

 

특검? 지금 상황에서는 해법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성사되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특검이 되어서 어떤 수사결과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 결과에 순응할 민심은 거의 없을 거예요. ‘만약에’라는 초강력 마약에 만병(萬病)이 깊어진 정치꾼들이 문제예요. 와중에 이제 남은 것은 평범한 국민의 지혜로운 선택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다가오는 선거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려는 유권자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해요. 지금 우리가 제대로 못 하면 우리 자식들, 손주들의 미래는 엉망이 될 거예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오고 있어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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