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동물해방

2021.11.29 06:00:00 13면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도 이제는 개고기를 먹는 걸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 면서 임기말에 매우 민감한 사안을 제기했다. 개나 고양이 등을 가족으로 여기며 함께 사는 반려인구가 1500만 명이 넘는다. 대선후보들의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언론이 지금 '품격 저널리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비교적 공정하고 이성적이며 상식적이라면, 윤석열 후보는 소위 '개사과' 논란만으로도 낙마할 수 있었다. 자멸적으로 황당무계하고 불가사의한 언동이 날마다 벌어져도 그가 건재한 것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제일의 특징이다.

 

개를 자식과 다름없이 키운다는 그는 또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 망언을 했다. 자가당착이다. 바보 같지만, 교활하다. 이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동물정책연대는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는 개는 없다"며 심지어 후보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지율은 그대로다.

 

나는 채식주의자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훗날 건강에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걱정과 충고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고맙지만 이 길을 멈출 마음은 없다. 변함없이 이렇게 가다가, 어느 날 낙엽지듯 소리없이 쓸쓸하게 이번 생을 마치고 싶다. 아래의 체험이 초식 인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40여 년 전, 최전방 화천 대성산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그 동네 겨울은 시베리아다. 그 어느 날이었다. 윤 상사가 민촌에서 낮술하고 귀대하여 또 술주정이다. 파월장병 출신으로 조울증이었다. 거기서 영혼이 부서진 것이었다. 만취한 날엔 으레 월남에서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못된 짓들을 자랑하듯 떠벌였다.

 

'알파'가 벌써 몇 차례나 자신의 책상에 오줌을 쌌다며 혼을 내주라고 명령했다. 안병장이 행정반 구석에서 졸고 있는 부대의 귀염둥이를 벌겋게 달아있는 화목난로 속에 집어던졌다. 몇 초 후 퍽 하며 골이 터지던 그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삽시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실로 잔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알고서 병사들 여럿이 울었다. 물론 나도. 그 충격은 아직도 그대로다.

 

몇 달 뒤, 더 크게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안이 제대하던 날, 동대구역에 환영 나온 친구들과 거하게 술판을 벌였다 한다. 부모님도 뵙기 전이었다. 자리가 파한 뒤, 그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어 즉사했다. 젊은 시절, 그보다 더 강력한 인과론의 증거는 없었다.

 

수백만 년 이어온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DNA가 된 섭생은 자연현상이다. 소 돼지 닭 등은 대다수의 먹거리다. 그 전통을 거스르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이단자들의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흐뭇하다. 개와 고양이에 대한 편애현상은 동물생명권의 보편주의로 승화되기 바란다. 대통령이 때마침 공론화했으니 이 주제로 새 대통령이 결정되면 참 좋겠다.

 

"짐승들을 대하는 태도로 한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씀이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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