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징검다리] 신분대물림교육, 정보공개와 기회균등선발로 상쇄하자

2021.12.15 06:00:00 13면


 

최근 내가 접한 통계 중 가장 무서운 통계는 2021년 의대 신입생 2977명 가운데 무려 80.6%가 월 가구소득 920만 원이 넘는 부유층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19.4%도 빈곤한 가정출신은 아닐 테니 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지독한 부잣집편중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없는집’ 자식들이 의사되기는 틀렸다. 이미 의사는 부모찬스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특권직업이다. 의대생만이 아니다. 로스쿨학생은 물론 SKY 등 명문대 학생과 예술계 학생도 부유층과 전문직 가정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드물게 발표되는 관련통계들은 우리사회에서 교육이 계층이동수단에서 신분대물림수단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명징하게 보여준다.

 

만약 매년 명문대별, 인기단과대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 분위 소득분포가 지난 10년 동안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나아가서 영재고/과학고/국제고/외고/예고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분위 소득분포가 함께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교육의 신분대물림 강화효과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면서 전사회적으로 폭동의 기운이 감돌았을 것이고 예방차원에서라도 정치권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를 유발하는 특권고교는 국제고와 외고, 영재고와 과학고를 가리지 않고 모두 폐지되는 방향으로 정리됐을 것 같다. 명문대학과 인기학과에 대해서도 최소한 30% 이상의 기회균등선발전형을 의무화했을 것 같다. 진실의 문이 열리면 동시에 정의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와 소득의 분배 관련통계는 좀처럼 상세하게 작성되거나 공표되지 않는다.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소득분포통계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4개의 과학기술원(카이스트, GIST, UNIST, DIST) 학생의 부잣집 편중상태가 어떤지, 이른바 명문대 신입생과 인기학과의 학부모 소득분포는 어떤지를 알지 못한다. 특히 의대(치의대, 한의대, 수의대) 별, 로스쿨별, 교대별, 예체대(미대, 음대, 체대)별 부잣집 편중상황이 어떤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최대의 시대화두로 떠오른 나라에서 관련통계의 결여는 말이 안 된다. 통계의 결여는 곧 입법과 정책의 결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전국의 모든 학교가 매년도 신입생의 학부모집단에 대해 10 분위 소득분포통계를 작성, 공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처럼 교육관련 분배통계를 만들어내고 그에 비추어 바람직한 정책을 만들어낼 때만 교육이 신분대물림수단으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생각으로 나는 서울교육감시절 서울관내 1300개 학교의 저소득층 학부모비율을 조사해서 교육행정의 ‘매직 넘버’로 사용한 바 있다. 어느 사회든지 교육에 대해 거는 첫 번째 기대는 모두(=약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계층이동을 촉진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이런 기대를 배반하고 교육이 부모신분의 세습수단으로 전락하면 평등한 세상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소득중하위 가정출신 아이들의 재능이 사장돼 풍요한 세상에서도 멀어진다.

 

민주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명문대 부모찬스 혹은 신분세습의 폭은 크지 않다. 공부 잘하는 유전인자는 부모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뿌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강남’ 아이들, 전문직집안아이들, 부잣집아이들이 SKY 신입생의 대종을 이룬다면 교육의 세습효과가 평등효과보다 크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입에서 부모의 경제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회균등선발전형의 확대 및 의무화가 불가피하다. ‘이대남’의 반대가 예상되더라도 소득하위 60%에 의과대와 로스쿨, 명문대 신입생의 최소한 30%를 보장하되 하위 30%에도 10%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 기회균등선발전형을 과감하게 의무화하지 않는 이상 명문대는 부유층의 신분대물림 수단이 될 전망이다.

곽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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