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시선] 죽(粥) 이야기

2021.12.16 06:00:00 13면

 

 

가난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죽 이야기, 부족함이 없을 때 먹으면 건강식이지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다면 슬픈 이야기가 된다. 뜨거우면 불어서 먹고 식으면 그냥 음료 마시듯 ‘쉬운 죽 먹기’다. 남쪽에서 죽은 아주 고급지게 만든다. 배부른 곳에 와서 다시는 죽을 먹지 않으리라 했으나 별식으로 자꾸 권하기에 먹는데 그때마다 죽의 맛에 감탄한다.

 

죽에 대한 몇 가지가 기억을 떠올려 보면 가난한 때에 싫도록 먹었던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 시기 먹었던 죽은 식욕에 대한 원초적 해결을 위한 것이기에 처절하다. 아주 작은 양으로도 살릴 수 있었는데, 영양실조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곡성, 떠도는 아이와 노인들, 죽느냐, 사느냐가 생사를 가르니 부족한 식욕이 식탐을 만들어 먹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죽 한 그릇이 소원일 때가 있었다. 곡기 없는 죽을 먹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면 생명이 경이롭기도 하다. 이 시기 먹었던 죽은 ‘맛’보다는 ‘생존’이었다.

 

죽을 ‘맛’으로 먹었던 때도 있다. 항상 가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넉넉할 때는 낭만도 있어 솥을 둘러메고 냇가로 나가 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어죽을 끓여먹고 한바탕 놀 때도 있었다. 청진이나 해변가 사람들은 생선의 내장으로 어죽을 자주 해 먹는다. 그리고 남쪽에 와서도 고향에서 먹던 방식으로 만들어 먹는데, 모국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은 남성들이 더 강한 것 같다. 강냉이(옥수수)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는 통 강냉이를 껍질을 벗겨 알이 터지도록 푹 삶고 팥이나 줄당콩(강낭콩)을 넣고 죽을 만들어 먹는데 국물 없이 범벅된 것도 맛있다. 추운 겨울 김치와 같이 먹으면 지역 환경에 걸 맞는 특색 있는 음식이 된다. 감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감자를 갈아서 녹말과 반죽하여 ‘감자오구랑 팥죽’을 만들기도 한다. 감자녹말로 단자를 만든 것은 질기고 쫄깃한 것이 팥과 어울리며 구색을 갖춘다. ‘맛’으로 먹은 음식은 뼈에 새겨지며 그리움이 사무칠 때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된다.

 

몸이 허한 사람에게 보양식으로 죽을 만들기도 한다. 구하기 쉽지 않은 잉어나 메기 등을 사서 푹 다려서 쌀과 함께 죽을 만들어 환자에게 드리기도 한다. 산모에게도 밥보다는 계란을 넣어 죽을 만들어 준다. 죽은 특별한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료의 선택에 따라 어죽, 남새죽, 콩죽 팥죽, 등으로 나뉜다.

 

민속음식으로 12월 동짓달에 먹는 팥죽이 있다. 저물어가는 한해의 액운을 몰아내고 새해의 좋은 기운을 받으려고 넉넉하지 않아도 이날에는 팥죽을 해먹는다. 단자가 남쪽보다는 조금 크기 때문에 동그랗게도 납작하게도 해서 넣는데, 잘 익으라고 가운데를 꼭 눌러준다. 그래서 ‘동지팥죽’ 또는 ‘오그랑 팥죽’이라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 먹었느냐에 따라 ‘맛’과 ‘생존’ 음식이 다르듯 배부를 때 먹으면 건강식이고 배고플 때 먹으면 슬픈 이야기가 된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베어다 죽(粥)한 그릇에 담아 액운을 물리치고 새해 큰 복을 받고 싶은 죽 이야기.

위영금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