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윤의 좌충우돌] 10달러 원칙

2022.01.03 06:00:00 인천 1면

 

 

"하루 여행 경비는 10달러를 넘지 않는다"

 

‘10달러 원칙’은 청년 시절 나만의 여행 방식이었다.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 긴 시간 방랑생활의 규율이기도 했다. 숙박지는 대개 싸구려 도미토리였는데 침구는 때에 찌들어 불결했다. 게다가 벼룩과 빈대의 습격은 고역이었다.

 

적도의 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벌레에 물려 밤새 가려움에 박박 긁어댔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김장용 비닐이었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비닐을 깔아 해충이 침구를 뚫고 올라오는 걸 막았다. 바스락대는 촉감이 거슬렸지만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시달리는 것보다 나았다. 대형 비닐은 내 장기 배낭여행 필수품이었다.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은 밤 버스를 이용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웅크린 채 앉아서 잠을 청해야 했지만 선선한 밤하늘 아름다운 별들 사이로 길을 만들며 지나는 별똥별은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자연은 두려움을 내려놓으면 기적 같은 선물을 무심히 던져 주곤 했다.

 

10달러 원칙으로 호사를 누릴 기회도 만들었다. 먹고 자는 돈을 아껴 중국 병마용, 인도 타지마할,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처럼 입장료가 비싼 유적지를 경험하거나 현지에서의 식도락을 즐겼다. 빈곤을 감내한 풍요는 여독을 잊을 만큼 달콤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古)도시 베트남 호이안에서는 형형색색 야경을 즐기는 인파 속에서 숙소를 찾아 헤맸다. 축제기간이라 저렴한 도미토리는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영업이 끝난 허름한 식당을 기웃거렸다. 순박하게 생긴 여성에게 홀 청소를 거들 테니 하룻밤 재워 달라 간청했다. 그이는 고맙게도 나를 자기 집에 묵게 해주었다. 베트남 가족 틈새에 끼어 뒤척이며 하룻밤을 보냈다.

 

인도는 아쉬람에 묵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약간의 기부금을 내면 숙식이 무료인데다 요가와 명상까지 할 수 있었다. 어떤 아쉬람에는 “임신한 여왕처럼 걸음을 걸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도 사람들과 함께 느릿느릿 성스럽게 순례길을 걸으며 영혼에 깃든 슬픔을 조금씩 덜어냈다. 리쉬케시, 뿌나, 첸나이에서는 아쉬람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며 한 달씩 지냈다.

 

그루지아는 게스트하우스 자체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즈니스호텔도 배낭 여행자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호텔 프런트 매니저에게 사정을 말하며 숙박비를 깎아 달라 부탁했다. 처음에 난색을 표하던 그녀는 가련한 여행자에게 연민을 느꼈는지 도미토리 가격에 방을 내주었다.

 

베트남 식당, 인도의 아쉬람, 그루지아의 호텔은 이방인인 내게 경계를 풀고 기꺼이 나의 집이 되어주었다. 물가가 비싼 곳은 서둘러 통과하고 물가가 저렴한 곳은 느긋하게 머물며 여행을 이어갔다. 길 위에서 삶의 속도를 익히며 세상을 향해 달려 가야할 때와 관조할 때를 배웠다. 10달러 원칙은 가난에 위축되지 않고 삶에 패배하지 않는 힘을 길러준 나만의 생존방식이었다.

 

박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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