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사기 공화국’ 딱지

2022.01.05 06:00:00 13면

 

 

조희팔은 2000년대 희대의 사기 사건 주범이죠. 그는 지난 2004년부터 4년여 사이 전국에 10여 개 다단계 판매 업체를 차려 무려 5조 원을 가로챘지요. 검경(檢警)은 조희팔이 2011년 12월 중국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결론 지었지만, ‘죽음’마저도 사기극일 개연성이 높다는 의심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지요.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은 34만7675건으로서 전년 대비 무려 14.2%나 늘어났대요. 같은 기간 전체 범죄 중 무려 21.9%나 된다니 가히 국제적으로 ‘사기 공화국’이라는 딱지가 붙을 만해요. 대체 사기범죄가 이렇게 넘쳐나는 요인은 뭔가요?

 

최근 사기꾼들의 범죄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이에요. 피해대상도 노인이나 아이, 퇴직자, 취업준비생 등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확산하고 있어요. 정부 재난지원금과 지원 대출 등을 빙자해 현금인출이나 계좌이체를 요구하는 피싱, 코로나 안내문자와 유사한 내용으로 속여 악성코드가 심어진 문자의 링크를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스미싱도 있군요.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대부분 취약계층인 피해자의 손해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사기’는 악랄한 범죄예요. 민사재판에서 사기 피해자가 직접 그 증거를 입증해야 하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하늘의 별 따기죠. ‘형사배상신청제도’와 ‘부패재산몰수법’이 있다지만 법원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군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기범죄 증가 요인으로 경기불황 장기화, 비대면 추세, 범죄 지능화 등을 꼽네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게 빠져 있어요. 바로 사기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문제예요. 다른 건 볼 것도 없이, 사기 범죄자의 재범률이 다른 범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40%에 가깝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해요. 수사당국은 피해액이 1억 원 미만일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네요.

 

법원의 양형기준도 빼돌린 금액이 50억 원 이상은 되어야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하게 돼 있대요. 결과적으로 사기꾼들은 사기죄로 잡히더라도 오히려 한 푼이라도 회복하고자 급급해진 피해자 앞에서 갑질을 하며 합의를 시도하는 등 가벼운 처벌을 받은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얘기죠. 그야말로 사기범죄 자체가 수지맞는 장사수단이 되는 거예요. 단죄(斷罪) 구조가 이리 허술해서는 백 년이 흘러가도 ‘사기 공화국’ 오명을 떼기는 어려울 게 뻔해요.

 

미국의 범죄경제학자 베커(Gary Becker)는 합리적 선택이론에 기초하여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이 존재할 때 범죄행위를 중단 또는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어요.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게 되지요. 부끄러움과 절망감으로 인생을 망치거나 자살에 이르는 사람은 또 얼마인가요. 그나 마나, 조희팔은 그때 정말 중국에서 죽은 거 맞나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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