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표퓰리즘’ 막장 대선, 정치혐오만 키운다

2022.01.12 06:00:00 13면

‘이념·젠더 갈등’까지 악용…나라미래 설계는 외면

오는 3월 9일 실시되는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선거 레이스가 점점 더 망국적 ‘표(票)퓰리즘’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후보들이 득표를 위해 꾀를 내는 일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소아적 개인주의에 영합해 ‘이념·젠더 갈등’까지 악용하면서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언행을 서슴지 않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유권자들의 분별력을 마비시켜 이득을 보려는 이런 선거행태는 역사에 대죄를 짓는 행위다. 국민 사이에 점차 팽배해가고 있는 유례없는 정치혐오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걱정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 등 ‘이념·젠더 갈등’ 확산정치에 앞장서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페미니즘, 성소수자 문제 등을 다뤄온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해 20~30대 여성 유권자 표심을 겨냥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공약을 개발하려는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양성평등’이라는 훨씬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도외시하면서 나라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생략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석 달 전 “여성가족부(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던 윤석열 후보가 돌연 여가부 폐지를 선언했다. 지지 기반이 취약한 2030여성의 표를 의식해 ‘90년생 페미니스트’ 신지예 씨를 선대위 요직에 깜짝 영입했다가 영입 2주 만에 자진 사퇴 형식으로 정리한 끝이다. 윤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는 불과 며칠 만에 3만 명 이상의 지지와 1만 개 이상의 댓글이 올라왔다. 같은 방식으로 윤 후보가 SNS에 올린 ‘병사 봉급 월 200만 원’ 공약도 9000명 이상의 지지와 30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2001년 신설된 여가부는 호주제 폐지, 성폭력·성매매 방지법 제정, 경력 단절 여성 지원, 다문화 가정 정책 수립 등 20여 년 동안 많은 업적을 이뤘다. 그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윤미향 의원의 갈등 등에서 피해자의 권익 옹호에 나서지 않은 뜻밖의 잘못을 저질러 정쟁의 빌미를 주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세월호 사건 이후 졸속 선언된 ‘해양경찰 폐지’처럼 다짜고짜 ‘폐지’부터 들고나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선 국면에서의 과잉공약은 역대 대통령들이 끝내 떨쳐내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제왕적 권력 행태의 뿌리다. 선거 때만 되면 마치 황제적 권력을 가진 것처럼 마구잡이로 내지르는 공약과 거기에 쉽게 현혹되는 유권자들의 반응이 망국적 권력 만취 놀음을 만들어낸다. 이번 대선에서도 영락없이 그런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유권자를 손쉽게 꾀어 넘길 수 있는 팔랑귀 취급하면서 표만 따라 오락가락 공약을 내뱉는 후보들의 행태는 당장 시정돼야 한다. 국가사회의 미래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기는커녕 ‘소확행’이니 ‘심쿵’이니 유권자의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 찾기에 매달려 정책과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후보들의 천박한 행태가 참담하다. 2022년 대명천지에 ‘이대남녀 갈라치기’ 분열 책동이라니, 대체 이 무슨 고약한 분탕질인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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