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화수목금일일일(火水木金日日日)’

2022.02.23 06:00:00 13면

 

 

 

우리가 쓰고 있는 주7일 짜리 요일제(曜日制)의 근원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하루를 쉬었다는 구약성서 창세기 편이죠. 거기에다가 땅을 중심으로 해와 달,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다섯 행성이 시간을 관장한다고 여긴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이 결합한 개념이에요. 요일 개념이 없었던 조선 시대에 관청에서는 1일·8일·16일·23일 그리고 연 24회의 절기마다 업무를 보지 않았다지요.

 

요일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1895년 갑오개혁 때예요. 오랜 기간 계속되던 ‘주6일 근무제’가 ‘주5일제’로 넘어간 게 2003년이었으니까 한 20년 됐네요. 그런데 요즘 20대 대통령 선거 한복판에서 ‘주4일제 근무’가 화두로 떠올랐어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주4.5일제’를 정책으로 꺼내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지요. 어떻게든 더 쉬고 싶은 현대인에게 달콤한 유혹인 건 분명해요.

 

유럽에서는 이런 변화의 흐름이 진작부터 나타나고 있어요. 가장 앞서가고 있는 나라는 아이슬란드예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현재 국민의 약 90%가 주35~36시간만 일하고 있대요. 스페인도 지난해 일부 기업에 임금 삭감 없는 주4일 근무제를 시범 도입했고요. 스코틀랜드는 내년부터 6개월간 ‘주4일제’ 실험을 시작한다지요.

 

최근 눈에 띄는 나라는 벨기에이군요. 지난 15일 발표된 노동법 개정안을 보면 엄격한 ‘주38시간 근무제’에서 폭넓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주 4일제’를 도입했군요. 일할 때 빡세게 하고, 놀 때 왕창 놀아도 된다는 얘기로군요. 벨기에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개정안 중에는 20명 이상 기업의 근로자에게 정규 근무시간 외에 상사의 전화나 이메일에 답할 필요가 없도록 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가 이채롭네요.

 

정치권에서 ‘노동시간 단축’ 같은 공약이 나올 적마다 복장 터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노동현장의 형편상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거든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필요성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긴 했지만, 특성에 따라서 따라가지 못할 산업현장이 훨씬 많잖아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렇지 않아도 천차만별인 노동격차만 더욱 가팔라질 수도 있는 문제라서 연구할 게 엄청나게 많을 듯해요.

 

일단 화두가 던져졌으니 ‘주4일 근무제’는 논의가 계속되겠지요. 그러나 일부 노동현장이 아니고서는 해당 사항이 없을 법한 고약한 신기루를 놓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키우고 노사갈등이나 덧내는 일은 없길 빌어요. 걸핏하면 사탕발림 공약 꺼내놓고 마약 같은 포퓰리즘 폭탄 터트리며 민심 갈라치는 난리굿이 많은 나라라서 걱정스럽긴 해요. 그래도 어쨌거나, 화수목금일일일(火水木金日日日)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긴 하는군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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