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2022.03.15 06:00:00 13면

 

1. 

 

경기신문에 문재인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명기한 칼럼을 처음으로 쓴 것이 2021년 3월 12일이었다. 꼭 1년 사흘 전이다. 이후 다섯 번의 칼럼을 통해 직접 대통령을 거명했다. 

 

부동산과 인사문제를 필두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본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강력히 행사해줄 것을 곡진하게 요청했다. 

 

대통령은 단순히 초월적이고 중립적인 관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적 핵심 사안에 단호히 개입하여 권력을 행사할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칼럼을 통한 나의 요청이 일개 필부의 사견을 넘어, 시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대신 전하는 것이라고 감히 믿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에 상응하는 해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대통령 선거의 핵심 분수령 중 하나가 (정부 지시에 적극 협조하다가 심대한 피해를 떠안은) 자영업자 및 중소상공인에 대한 즉각적, 대대적인 손실보상 및 재정 지원이었다. 추경예산의 획기적 증대를 비롯한 이에 대한 절절한 요청 또한 무시당했다. 

 

개혁지향 시민들의 거듭된 분노와 절규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홍남기 기재부 장관을 정권 마지막까지 안고 가는 중이다. 

 

그리고 결국 선거에 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2달도 채 남지 남았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 하지만 남은 2달 동안 그는 여전히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지닌 국가 최고지도자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에서 그에게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권한 행사를 요청드린다. 

 

바로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이다. 

 

2. 

 

우리 헌법 제79조 제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적시한다. 이른바 대통령 고유권한으로서 사면권이다. 

 

1997년 12월 22일 제 15대 대통령 선거가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끝난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 등으로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노태우는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그렇듯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권력을 찬탈한 자들이 구속 2년 만에 감옥을 나온 것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온갖 비난의 화살을 홀로 감당하며 사면권을 행사한 이유는 명백했다. 후임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고 국민 대통합의 길을 닦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었던 게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지도자로서 응당 감당해야 할 책무였기 때문이다. 

 

출근하다 보니 윤석열 당선자의 감사 현수막이 동네 어귀에 걸렸다. 거기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언론에 내보낸 그의 첫 번째 당선 소감 역시 “통합과 번영”이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자의 그러한 여망에 화답하여, 차기 정부의 국민 화합 기초를 닦아줘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3. 

 

시각에 따라 정명(正名)은 달라질 것이다. 누구는 ‘검찰의 난(亂)’이라 부르고 누구는 ‘조국사태’라고 부른다. 하지만 관점 여하에 상관없이, 2019년 늦여름부터 시작된 해당 사태가 나라를 완전히 둘로 쪼갠 충돌과 분열의 정점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러한 국론분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이 자리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된 윤석열을 총장에 임명한 사람이 누구인가.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 평가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와 동시에 한국 검찰의 쌓이고 쌓인 구조적 적폐를 해결하라고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사람 역시 문재인이었다. 

 

이후 사태의 진행이 어떠했든 지는 만천하가 안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묶은 매듭을 남은 임기 내에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것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는 민주당 정권 탄생의 진원지였던 국정농단 사태 주범이자, 형기의 4분의 1도 못 채운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사면시키지 않았는가.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한술 더 떠 이제는 대선이 끝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까지 대통령 당선자와 여당 국회의원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그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문 대통령 자신이 "무엇보다 지금은 통합의 시간이다...선거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고, 치유하고, 통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스스로의 입으로 천명했다. 

 

4.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정경심 교수는 구속기간 만료와 법정구속 등을 되풀이하며 현재 총 1년 9개월 동안을 수감 중이다. 우리나라 형법은 형기의 3분의 1을 마친 수감자에게 가석방 자격을 부여한다. 이미 그 자격은 충족되었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문 대통령의 사면 이유는 국민 통합과 포용이었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의 국론분열 극복 차원에서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은 박근혜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진다. 

 

정경심 교수가 흰 광목천처럼 흠이 없고 순일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정의(正義)의 균형에 있다. 정의는 그 자체로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권한을 가진 모든 국가기관은 비록 법률에 명시돼 있더라도 그 권한을 형평성에 기초해서 행사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집권기간 동안 벌어졌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행 혐의에 대한 판결을 보라. 홍정욱 전 국회의원 딸의 마약 밀반입사건 판결을 보라. 86억원 뇌물공여 범죄를 저지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보라.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이 같은 조치들에 비해 정경심 교수에게 내려진 처벌 수위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과도한 것인지는 법률가 출신인 대통령 자신이 명증하게 인식하고 있으리라 본다. 그녀에 대한 가혹한 징벌이 검찰개혁을 둘러싼 격심한 충돌이 빚어낸 정치적 희생양의 성격임을 세상의 어느 누가 부인하겠는가 이 말이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정경심 교수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문 대통령 스스로가 공언한 필생의 목표였던 ‘검찰개혁’의 대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사람이 조국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검찰기득권에 대한 도전’의 결과로, 역시 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의해 조국과 그의 일가가 (법률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마녀사냥에 가까운) 난도질을 당하고 온 가족의 인생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사태 진행에 과연 문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도리질 치겠는가? 

 

그러니 당신이 묶어놓은 매듭을 당신이 풀어라. 국민 통합을 위한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역사적 소명을 실천하고 가라.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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