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색] 금강산 CIQ에서의 심야 남북 만남

2022.03.23 06:00:00 13면

 

 

2002년 4월 금강산에서 처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1-3차는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었으나 북한이 이를 꺼리고 금강산에서 열기를 희망하여 이후 2018년 21차까지 금강산에서 상봉행사가 열리었다.

 

금강산에서 처음 개최된 4차 행사는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다. 이산가족들의 이동문제도 그렇고 특히 상봉행사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남북간 합의에 어려움이 많았다. 북측은 통제 가운데의 만남, 만남시간도 가능하면 줄이길 원했고 하룻밤의 동숙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산가족들의 선물 수송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 일의 책임을 맡은 나로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4차 행사를 끝내고 돌아와 이번 행사를 평가하며 다음 행사에서는 원활한 입경(入境)수속을 위해 북측 CIQ 직원들과 특별한 만남을 준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9월의 5차 상봉행사 시, 입경수속 때 북측 CIQ 팀장인 K선생에게 오늘 밤 북측 CIQ숙소에서의 만남을 제의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좋다고 대답했다.

 

북측 직원숙소는 우리 숙소인 해금강호텔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용기를 내어 준비해간 담배, 과자, 술 등 선물을 가지고 12시가 가까운 시간 북측숙소를 방문했다. 깜깜한 북한 숙소, 잠자리에 들었다 놀라 당황하며 나온 K선생이 나에게 하는 말이, “장난으로 한 말을 그대로 받으면 어캅네까?” 그래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내게는 이후의 10년 가까이 수 많은 북측인사와의 만남에서 내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정해주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경청(敬聽)하는 태도, 나중에 함께 살아야 할 할 동포라는 사실, 그리고 역지사지의 관점을 잊지 말자고.

 

악화일로의 현 남북관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힘에 바탕을 둔 평화, 원칙을 앞세운 남북관계. 나름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자. 월등히 강한 경제력을 가진 남한이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며, 비핵화 없이는 제재를 해제할 수 없고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북한이 어떻게 받아 드리겠는가. 자신들의 원칙인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주장과 상반되는 우리의 원칙을 북한이 받아 드릴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2018년의 싱가포르 북미회담과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5·1경기장에서의 문대통령 연설을 들은 북한은 대북제재의 해제와 경제발전의 희망에 부풀었었다. 이듬해 3월 하노이회담에서의 배신감과 이후의 한국과 미국의 행태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감행토록 했다고 생각된다. 비난받을 도발이지만 그래도 북한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역지사지한다면 남북관계의 재개, 나아가 핵문제 해결의 문이 열릴 것이라 확신한다.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정부에서의 전환적 사고를 기대한다.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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