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옥봉'

2022.04.07 06:00:00 13면

 

조선 중기에 천재 딸 셋이 태어났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운(悲運)의 시간이었다. 황진이 허난설헌 이숙원이 그들이다. 여염집 처자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것은 대개 불행의 원인이었다. 치명적인 저주가 되기도 했다. 몽매하고 흉악한 시대였다. 황진이는 시서화무(詩書畵舞)의 탁월한 종합예술가로 당대를 풍미했다. 기생이었기에 가능했다. 성리학이란 게 이 얼마나 난폭한 세계관인가.

 

난설헌과 진이에 비하여 덜 알려진 숙원은 이들 못지않은 천재였다. 왕실 후손으로 출세길을 마다하고 시골 군수를 지냈던 이봉(李逢)의 서녀였다. 멸문폐족의 한 처자와 화합하여 얻은 이 특별한 딸은 아비의 문재를 내려받아 총기 넘치고 영민하였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호를 옥봉(玉峰)이라 지었다. 이봉은 '옥돌이 아름답게 솟아오른 봉오리'에 크게 감탄했다. 그날부터 숙원은 옥봉이 되었다. 그 이름은 아비가 하늘까지 높여준 자존감의 기호였다. 딸은 무시하고 첩의 딸은 더욱 심하게 냉대하는 천형의 세상에 던진 돌팔매였다.

 

옥봉은 열다섯에 당시 젊은 관리 중에 가장 촉망받던 엘리트 조원을 찍어 그의 소실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봉은 딸을 위하여 그에게 청혼한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그의 장인을 찾아가서 담판하여 뜻을 이룬다. 옥봉은 이렇게 훗날 승지가 된 운강 조원의 첩이 된다.  꿈만 같았다. 심신의 교합은 언제나 최상의 열락이었다. 조원은 옥봉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내심 존경했다. 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 후 옥봉이 겪은 날벼락의 곡절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비참한 사연이다. 왕실 후손이 오갈데 없는 소박데기가 된 것이다. 조원의 옹졸함과 비겁함이 이유였다. 사내들은 대개 그처럼 나쁜 짐승이다. 설상가상으로 임진왜란은 조선을 죽이기 전에 옥봉을 먼저 죽였다. 시인은 죽지만 그의 시는 죽지 않는다. 현자들은 문장으로 영생한다.

 

조선중기에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낸 최고의 문장가 신흠(申欽)은 "근래 규수들의 작품 가운데 승지 조원의 첩 옥봉 시가 으뜸이다. 고금의 시인들 가운데 이렇게 표현한 이는 없었다"고 극찬했다. 허균은 "옥봉 시는 맑고 굳세다. 화장끼가 없다. 누님 난설헌과 동급"이라 썼다. 역시 중국과 일본의 문사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역수입'된 시집을 보고 그 존재를 알게 된 이들이 많았다.

 

 

옥봉은 창공의 성좌다. 시편들은 편편이 하나의 별이다. 기나긴 세월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부실하게 전해내려오던 그의 인생과 문학을 소설 '옥봉'이 구출했다. 특유의 비극묘사는 긴장감과 생동감으로 일관하여 첫 장을 열면 끝을 보게 한다. '옥봉'은 환생한 옥봉이 낭독하는 자서전이다. 이로써 옥봉은 마침내 400년 포한의 우울과 침묵에서 벗어난다. 오늘 옥봉은 그 충일한 유열감을 참을 수 없어 활짝 피어난 춘삼월 함박꽃이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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