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윤의 좌충우돌] 빈둥거림의 미학

2022.04.13 06:00:00 13면

 

인도의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도시였다. 그곳에는 성스러운 하천(河川) 갠지스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은 여기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축복을 내린다.

 

갠지스 강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장지(葬地)였다. 상여를 매고 수천 킬로를 걸어 온 사람들도 있었다. 화장터 장작더미에 올려진 시체를 태우고 수습해서 강에 수장(水葬)했다. 장작을 사지 못한 가난한 사람은 시신을 몰래 강에 던진다고 했다. 어느 것이든 지상에서 삶을 마친 인간을 신에게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강물에서 목욕을 하면서 소원을 비는 인도인들도 있었다. 죽은 몸들이 잠긴 강에서 한 모금 물을 떠먹으며 기도하기도 했다, 이해가 불가한 풍경이었다.

 

나는 바라나시 가트에 우두커니 앉아 구경했다. 청년 시절, 언제나 뭔가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경쟁 사회에서 벗어 나와 긴 여행을 떠난 나는 인도에서 그렇게 넋잃은 채 가만히 있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머물 작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필 세균성 장염에 걸려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말았던 것이다. 몹시 아팠다. 밤이면 갠지스 강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게 보였다. 환시였다. 바라나시에서 병을 얻으면 죽어 나간다는 말이 있다며 다들 걱정했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트에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날들도 늘었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의 진지한 의식을 호기심으로 구경하는 내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지 말아야지 하는 내 다짐이 등을 떠밀어 강으로 바짝 나가게 했다. 손에는 밀린 빨랫감이 들려 있었다. 출렁출렁 빨래를 했다. 문득 고개 들어 강 저편을 바라보는데 한 무더기 인도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룻배 위에서 초를 띄우며 신께 기도하던 그들은 강가에 앉아 빨래하는 외국여자를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구경꾼이던 내가 구경거리가 되던 순간이었다.

 

화끈거렸지만 ‘천박한 구경꾼’이어서는 안 된다던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을, 그들은 나를, 우리는 서로를 구경하고 있던 셈이었다. 도덕, 관습, 당위적인 명제만 되뇌던 내게, 조금은 자유로워지라고, 그 사슬을 끊고 모든 걸 벗어 같은 지평에 선다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거라고 신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신의 축복이 내게도 임하는 순간이었다.

나와 너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를 구별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건 내 안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혁명. 깨달음이었다.

 

인도에는 철학이 널려 있었다. 날 것 그대로라 어설픈 지식인의 전유물도, 혹은 정신적 스승의 은밀한 속삭임도 아니었다. ‘카르마’라는 삶과 죽음의 비밀스러운 원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상처 속에 스며 있었다. 이성을 닫고 오감을 열어 그걸 제대로 보는 자에게 인도는 감당하기 벅찬 삶의 지혜를 선물로 주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빈둥거림의 미학은 초탈의 능력이었다.

 

 

박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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