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궤변(詭辯) 공화국’

2022.04.20 06:00:00 13면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옛말이 있지요.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朱螺)는 바로 불어라’도 같은 뜻이지요.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워낙 이치에 닿지 않는 고약한 말들을 많이 지어내니 이를 경계하자고 내놓은 교훈일 거예요. 비뚤어진 입으로도 바른말을 하고 나발도 바로 부는데, 어찌 멀쩡한 입으로 곡변(曲辯)을 늘어놓는 사람이 이리 많으냐는 탄식의 의미도 보이는군요.

 

요즘은 뉴스마다 시사평론가들이 따라붙네요. 개 중에는 언론계에 오래 활약하여 전문성을 갖춘 이들도 있지만, 소위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등장시킨 정당 소속 ‘말꾼’들도 수두룩하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든, 지식인이랍시고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멀쩡한 양반들이 하나같이 현란한 말재주로 ‘저질 청백전’을 벌이는 모습이라니 거저 혀를 내두르게 되는군요.

 

신기한 것은 그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해도 자기 편 주장에 꿰맞추어 편견투성이 궤변을 지어내는 솜씨들이 하나같이 기가 막히는 수준이라는 사실이에요. 어느 쪽이라고 할 것도 없이 별별 논리들을 다 동원하여 읊어대는 변명과 반박이 멀쩡한 사람 홀리기에 딱 좋은 논법들이네요. 조금만 맑은 귀로 들어보면 영락없이 교묘한 ‘궤변’이거나 불순한 ‘선동’인 수박 겉핥기 말장난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어쩌다가 우리가 이 꼴이 되었을까요? ‘남을 부추겨 어떤 일이나 행동에 나서도록’ 선동하기 위해 ‘사고(思考)를 혼란하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양 꾸며대는’ 궤변 논법을 동원하는 천박한 행태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흐드러졌어요. ‘어차피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없는 바에야 어느 편이 더 재치 있게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소피스트(Sophist)들의 천국이었던 고대 희랍의 혼돈 속에 거꾸로 처박힌 느낌이에요.

 

어쩌다가 자기가 속한 정파의 주장에 어긋나는 반론을 조금이라도 폈다가는 무시무시한 ‘문자폭탄’ 같은 협박이 횡행하기 때문일 순 있어요. 그러나, ‘우리 편은 못 하는 일이 한 가지도 없고, 상대편은 잘하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잣대로 우겨대는 몰상식이 참으로 한심하네요. 설마 이렇게 천박한 잡탕 궤변 풍조를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줘도 괜찮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요?

 

작금의 천박한 ‘궤변(詭辯) 공화국’을 가능케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바로 국민을 개돼지 수준으로 여기기 때문이지요. 견문이 짧은 국민을 선도하는 사명은 아예 포기하고 오로지 선동 대상으로만 보는 까닭이에요. 이제는 막아내야 해요. 이 유치한 ‘청백전 민주주의’는 끝내야 해요. 확증편향의 노예가 되어서 조악한 ‘굽은 말’로 세상을 속이고, 자신마저 속이면서 ‘곧은 말’하는 사람을 무참히 사냥하는 야만 행태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해요.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를 이제는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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