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가 민주진영의 패배로 끝났다. 근소한 차이로 졌다고 하지만 그 영향이 너무도 엄청난 것이기에 패배 원인이라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그 원인을 민주정부의 치밀하지 못했던 국정 운영과 민생 정책의 총체적 실패에서 찾고자 한다.
우선 국정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지 못한 탓이 크다. 해방 후 한반도는 애초 미국의 냉전 전략에 따라 민주주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도록 설계돼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냉전 속에서 일본과 한반도에는 소련의 남진을 막을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민족의 이익이나 민주주의에 앞선 이 핵심적 국익 때문에 미국은 줄곧 독재세력의 집권을 도와왔다. 친일 부패 엘리트들이 지배 세력으로 재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승리를 쟁취한 민중을 대신해 집권한 민주 정부들은 하나같이 빈약한 정치적 비전으로 국정 난맥상을 보이다가 자멸하고 말았다. 4월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의 좌절, 1980년대 서울의 봄과 6월항쟁의 상황에서조차 독재를 끝장내지 못한 것 등은 그 생생한 사례이다. 민주 정당들의 분열과 일부 지도자들의 과욕이 빚은 결과였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역시 거악 세력들의 발목잡기로 휘청거리다가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단호한 국정 개혁은 촛불혁명의 시대적 요구였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권력은 올바르게 행사하도록 위임된 것임에도 그 권한 행사에 주저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매몰되어 ‘실질’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거기에 인사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에 이어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등 권력의 핵심 요직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구태 인물을 기용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인사 참사는 국정 난맥으로 이어졌고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아울러 무엇보다 섣부른 조세정책과 민생 외면이 결정적 패인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조세에 대한 감시’에서 출발한 제도이다. 그만큼 시민에게 조세정책은 예민한 문제이다. 재산을 불로소득으로 불린 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재산을 형성했음에도, 신중하고 세심한 배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중과세를 강행한 것은 취지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설상가상으로 예상을 뛰어넘은 빠른 속도로 종합부동산세를 올리고, 재산세나 양도소득세마저 중과세하는 정당을 지지할 중산층은 없다.
가장 뼈아픈 실패는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 조처를 묵묵히 따랐던 소상공인들의 처절했던 고통을 외면한 데서 비롯됐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정당’이라는 원내 172석의 민주당이 결과적으로 지지층을 스스로 내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은 이해불가이다. 재정 건전성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정부로부터 쥐꼬리 만한 지원을 받고 이에 만족할 소상공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땅의 민주주의는 의식 있는 시민들의 강렬한 민주 열망과, 중산층-서민들의 피땀어린 지지로 일궈온 것이다. 민주진영은 패배 원인을 깊이 새기고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