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퇴근할 수 있을까”…건설 노동자들 중대법 이후에도 불안

2022.04.28 16:17:49 1면

건설업계 안전교육 미실시 '관행'처럼 여겨져
“최고 경영자 사고 처벌 강화로 사고예방해야”

 

"중대재해법…건설업 기존 관행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을껍니다."

 

매일 아침 건설 현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 박 모씨(54)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깊어진다. 주변에서 하나 둘 다치고 숨지는 동료들이 늘어나지만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의 안전이 묵살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여전히 크고 작은 건설사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편법까지 써가며 법망을 피해 가고 있다며 탄식했다.

 

그는 "법적으로는 매번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사인을 해야 하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귀찮다, 그냥 했다고 칩시다'라는 식으로 서명하고 끝난다"며 "이런 일들이 빈번하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이어 "최근에도 철거 작업 중 천장이 무너져, 사다리 위에 있던 노동자들이 우르르 깔리는 사고가 났는데, 원청에서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 주고 산재 신고를 안 하는 쪽으로 설득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중대재해'의 기준도 모호하다. 법률에 따르면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 사고 6개월 이상 치료 요망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등을 중대산업재해로 명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노동자 개인이 아닌 기업의 관점에서 해석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용준 건설노조 수도권남부지역본부 노동안전국장은 "노동자 손가락 하나가 잘리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것도 1명이라면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한다"며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중대재해"라고 꼬집어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전국 중대산업재해 54건 발생·62명이 사망했다. 이중 경기도에서만 10건의 산재 사고가 일어났으며 총 14명이 사망했다.

 

노동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과 후에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 김 모씨(52)는 "건설 업종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청에서 일을 내리면 하청, 하청, 하청, 계속 내려가서 결국 돈을 쪼개먹게 된다"며 "업무 강도야 비슷하지만, 돈을 깎아버리니 자발적 노동강도를 높일 수 밖에 없어 업무 과중의 형태를 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건설 노동자 이 모씨(56)는 "대부분의 사고는 사 측의 무리한 공정과 안전에 대한 형식적이고 안일한 관리에서 비롯된다"며 "천장이 무너지든 땅이 꺼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부실한 공사 진행이 계속되는 한 산재사고도 중대재해도 반복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손익찬 변호사(법무법인 일과사람)는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공무원 처벌 조항이 빠져 있으며, 중대재해 발생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조항도 빠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외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후퇴한 내용이 많다”고 덧붙였다.

 

손 변호사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기소 의견으로 올라간 건은 단 한 건이고 그마저도 사망 사건은 한 건도 올라가지 못했다”며 “경총과 기업들은 현장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산업현장 곳곳에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불안 요소가 존재한다. 오늘도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오늘도 건설 노동자들은 “무사히 퇴근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일하다 죽지 않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등 그 말이 입속에서 맴돈다.

 

[ 경기신문 = 김한별 기자·임석규 수습기자 ]

김한별 기자·임석규 수습기자 hbkim@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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