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을 가다 74-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빚은 별유천지, 모래울동 이야기

2022.05.12 11:39:43 15면

 모래울동은 대청도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행정구역상 대청면 대청4리에 속한다. 모래울동이란 명칭은 조선왕조실록(정조실록)에 ‘모래 사(沙)’ ‘제방 언(堰)’이 합쳐진 ‘사언동(沙堰洞)’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지두리와 오지낭 사이로 강한 물살이 만(灣)으로 형성된 모래울 장수리 일대로 모래를 몰고 들어와 마을 앞의 남산에 큰 모래언덕이 생기게 되면서 부르게 된 것이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명칭 변경 때 ‘모래 사’, ‘여울 탄(灘)’의 합성어인 ‘사탄동(沙灘洞)’으로 개칭했으나 발음상의 문제로 현재는 ‘모래울동’이라 부른다. 2022년 4월 현재 40세대 61명이 거주하고 있다.

 

동으로 큰등재를 넘으면 고주동이고 서쪽은 갑죽도가 바로 보인다. 남쪽은 공동묘지 너머 기르마가리 해안 장수리이고, 북쪽은 지두리 산줄기에 있는 서내동 고개를 경계로 하고 있다. 이렇듯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어촌이면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기도 해 삼각산 중턱에서 바라보면 육지와 바다 경계면의 안락한 분지에 형성된 별유천지(別有天地)라 비견될만하다.

 

모래울동은 지형이 주는 풍광 자체의 신비감과 사시사철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자연의 멋스러움이 있으며, 아직 때 묻지 않고 자연에 기대어 사는 슬로시티에 해당한다. 그러나 곳곳마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골짜기마다 역사적 사연이 스며 있어 살펴본다.

 

지두리는 국어사전에 문지도리라 해 문을 문틀에 매달아 여닫는 기능을 했던 경첩을 말하는데 이곳 지형이 경첩과 같다고 해서 지도리가 방언인 지두리로 불려진 것이다. 지두리 해안에서는 만으로 이뤄진 전경도 일품이지만 해안 절벽에 드러난 지질학적 사건은 더욱 흥미롭다.

 

수평의 지층이 횡압력을 받아 엿가락처럼 휘어진 ‘∿’ 형태의 지층(습곡)과 지층의 융기와 침식으로 층위의 연속성이 끊어진 부정합(不整合) 등 기괴한 지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곳이다. 해안 절벽에 기하학적 문양과 자연의 이치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바닷가 쪽으로는 썰물에만 고개를 내미는 암초(여)들이 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진 낮은 산과 모래 해안가를 남산(일명 안산)과 모래울 장수리라 부르는데, ‘사언동’이나 ‘사탄동’은 여기에 형성된 큰 모래언덕(사구)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고 장수리는 은빛 모래 해수욕장으로 좋다.

 

남산은 옛날에 방풍 방사림으로 심은 소나무(樹高, 20~25m)가 100년 안팎의 시간이 흘러 노송지대가 됐으며, 2000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좋은 송림이 풍광과 쉼터를 제공해 준다. 서해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당집이 있다.

 

한편 모래밭은 해안가로부터 점점 높이를 더해가는 해안사구이며, 여기에는 원 순제와 연관 있다고 전해지는 기린 소나무와 멸종위기 야생식물Ⅱ급인 대청부채가 자생하고 있다.

 

삼각산 줄기가 모래울동 동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사지미기쪽으로 뻗어 산뿌리를 만들어 사지미기뿌리라고 하며, 이곳은 철분이 많은 암석으로 구성된 낭떨어지로서 돌쇳낭이라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대청도진장이 통치할 당시 이곳의 암석에서 철을 내서 정철(正鐵)을 만들어 수원부에 매년 500근씩 바쳤다고 한다.

 

또 해안선으로는 기암절벽으로 경관이 수려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케 한다. 바다 전면에는 갑죽도가 가로 놓여 아늑한 마을을 감싸주고 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한편 사탄분교가 있던 뒷산에는 조선시대 문무관에게 수여한 종2품 가선대부를 역임한 풍산 심씨 가문의 ‘가선대부풍산심공지비’란 비석이 있는데, 지금도 대청과 백령도 일대에는 풍산 심씨가 많이 거주해 과거에는 대청도를 중심으로 집성촌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해발고도 약 80m에 이르는 서풍바지는 하얀 규암으로만 이뤄진 웅장한 수직절벽으로 서쪽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을 그대로 맞이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강한 서풍이 부딪히는 이 해식절벽은 식생이 거의 자라지 못하지만, 동쪽의 완만한 사면은 울창한 수풀이 자라고 있다. 이곳은 대청도의 힐링 코스로도 유명한데 삼각산(해발 343m) 등반과 서풍바지 트레킹을 줄인 '삼서트레킹(7㎞ 구간)'이 있다.

또 이 마을의 생업을 알려주는 대후리막 골창, ‘후리 어법’은 바다에 ‘U’자 형태로 그물을 넓게 둘러치고 양쪽에서 여러 사람이 끌 줄을 잡아당겨 물고기를 잡는 형태로 이곳에서 1950~70년대까지 까나리를 잡을 때 쓰던 어법이다. 까나리 어획 시기는 4월 말부터 6월 20일(하지)까지 두 달 동안 이뤄졌으며, 규모가 커서 대후리라 불렀다.

 

보통 10여 명의 인력이 필요했기에 서울이나 인천에서 까나리 어부 즉 후리꾼을 모집해 들여오기도 했는데, 이들이 모여 막(幕)을 짓고 살던 곳을 대후리막 골창이라 부른다. 옥죽동에 거주하는 최○백옹의 선친께서 과거에 크게 대후리를 하셨다고 한다./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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