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행복하신가.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는가?

2022.05.26 13:01:07 10면

68.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 유호 쿠오스마넨

 

핀란드 영화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 칸영화제 등 여러 나라에서 수상한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이 영화가 표방하고 있는 고전주의 때문이다. 특히 신인 감독이 만든 작품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올리 마키’는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탔다. 이 상은 그 해 가장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작품과 감독에게 주는 상이다.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은 2008년 19분짜리 단편 ‘로드마커스’로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수상하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다. ‘올리 마키’는 사실상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제 관객과 비평가들이 주목했던 건 그의 형식주의다. ‘올리 마키’는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찍혔으며, 코닥 필름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해지는데, 필름으로 찍은 것을 다시 디지털로 전환해 가면서 작품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필름 촬영 – 현상 – 디지털 전환’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러기 위해서는 현상소가 있는 베를린과 디지털 작업을 위한 브뤼셀 등을 오가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필름을 구하기 위해 코닥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잔고 물품을 공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꼭 그래야만 했을까. ‘올리 마키’는 1962년이 배경이다. 16㎜ 코닥 필름이 당시의 색감과 질감을 표현해 내는 데 가장 적합했던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 덕인지, 영화는 1962년을 겨냥해 현대에 찍은 것이 아니라, 아예 1962년에 찍힌 것을 지금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전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고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프랑스 비평가들은 특히 이 ‘올리 마키’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수와 트뤼포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던 것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칸은 특히, 고전에 대해, 누벨바그 시대에 대해, 존경과 존중을 바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다분히 유럽적이라는 얘기다. 특수성이 강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무엇을 가지고 영화가 가져야 할 보편성을 채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특수와 보편의 결합이며 형식과 내용이 같이 가는 변증법의 완성이다. 1960년대 누벨바그식 영화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됐든, 일반 관객이 보기에 이 영화가 재미있느냐, 혹은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시대적 유용성을 충족시키느냐의 측면에서 작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에서 올리 마키(야르코 라흐티)는 핀란드 코콜라의 제빵사 출신의 아마추어 복서다. 코콜라는 우리로 따지자면 통영쯤 해당되는 항구도시로 비교적 잘 사는 도시지만 시골은 시골이다. 여기서 아마추어 복서의 영웅이 된 올리 마키는 페더급 프로 타이틀 전에 나가게 되는데, 이게 대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페더급 챔피언인 데이비드 무어와 경기를 펼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기면 올리 마키의 권투 인생은 탄탄대로가 된다. 일찌감치 시합이 열리게 될 헬싱키로 넘어가 로드워크 중인 올리 마키는 정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가장 행복한 날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가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다. 특히 체중감량이 문제다. 페더급은 56.5kg이 경계다. 올리는 아직 60kg 대이다. 시합이 2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3kg 이상을 감량해야 한다. 권투선수도 그렇고 일반인도 그렇지만 살을 빼야 할 때 유독 유혹이 많은 법이다. 게다가 코치(에로 밀로노프)는 프로모터를 겸하면서 그를 데리고 각종 파티에, 광고 촬영에, 훈련 외의 일정도 강행을 시킨다.

 

 

하지만 그런 건 사실 문제도 안 된다. 올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여자다. 코콜라에서 만난 라이야(우나 아이롤라) 때문에 그는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 올리는 권투와 연인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는 자신을 지금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타이틀전에서 이겨서 챔피언이 되는 것일까. 여인과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것일까. 인생에서 쉬운 선택은 없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록키’와 프랑스 클로드 를루슈가 만든 멜로 영화 ‘남과 여’를 합해 놓은 것 같다. 단, 드라마틱한 요소는 다 빼고. 영화 ‘올리 마키’는 일상의 삶에 과장이란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사랑의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드라이하기가 이루 말할 게 없다.

 

1962년에 남녀의 사랑의 표현은 그렇게 폭발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의 나신(裸身)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만(강가에서 수영하는 정도) 열렬히 키스하고, 섹스하고 등등은 그렇게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올리 마키’에서 올리와 라이야의 연애가 딱 그 수준이다. 그래서 자극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 기이한 무해함이 이상하게도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저 커플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연인 사이가 오래갈 것 같다는 시선을 주게 한다.

 

올리가 라이야와의 사랑을 결혼으로까지 굳히게 되는 순간은 챔피언과의 공동 기자회견 때이다. 그는 기자들 너머에 있는 라이야의 시선을 찾는다. 두 연인은 눈길로 서로를 찾아 헤맨다. 연인들은 자기들만의 표정과 눈길을 교환하기 마련인데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카메라는 두 남녀의 얼굴 표정과 시선의 클로즈업 컷을 교차로 보여주며 이 순간이 결국 심상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일종의 ‘행복한 불안증’을 보여 준다.

 

사실 이 장면 이후 올리는 권투 자체에 난조를 보인다. 코치와의 갈등도 노정된다. 코치는 올리에게 '지금 연애질을 할 때냐'고 힐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자신의 사랑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행복한 결말을 맞을 때만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행복한 결말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 자체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끝이 좋지 않으면 거기까지 이루어 온 모든 과정 자체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일종의 할리우드 장르 영화가 만들어 놓은 가스라이팅 같은 것이다.

 

실제의 삶, 진실의 인생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올리 마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실로 복합적이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 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그 와중에 여자를 얻었던 것, 그 중층의 인생살이에서 경험과 성찰을 얻었던 것 등등. 인생의 화양연화는,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시절에 있었던 것이지, 해냈던 순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은 인생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형식주의와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내용주의가 만나는 지점이 된다. 1960년대 초반의 삶은 밋밋했을지언정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도와 뭔가를 해내려고 했다. 사랑도, 차지하려는 욕심보다 같이 하고자 하는 소망이 더 강했을 법 하다. 지난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순수의 시대를 복원하자는 것만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에는 그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다.

오동진 ccbbkg@naver.com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