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블랙리스트 정당 대통령의 축전

2022.05.30 06:00:00 13면

 

 

일요일 꼭두새벽,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씨가 각각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틀째 사전투표를 마친 날이다. 한국은 정말 정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요원하다는 생각.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를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개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확대 발전하고 있는데 그 개인들의 역량을 담아낼 국가나 사회와 같은 체제의 용기(容器)는 매우 부실하다. 걱정은,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런 분위기가 오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번을 얘기하지만 아베 이후 일본 영화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신성(新星)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오죽했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명장(名匠)이 한국에 와서 한국영화를 찍겠는가. 일본 자국(自國) 내 침체된 분위기를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이 읽히는 부분이다. 고레에다는 한국 영화사와 《브로커》를 찍었고 그 주인공이 송강호이며 송강호가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탄 것이다. 한국영화와 한국의 배우가 아시아형 영화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명실공히 대표 격 선수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도 시진핑 이후 도무지 영화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러시아 역시 푸틴 독재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국도 트럼프가 만든 암흑의 시대 때문에 여전히 타격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의 영화가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는 과거 5년의, ‘열린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가나 공적 시스템과는 애초부터 따로 가려는, 그렇게 별개의 능력을 지닌, 국민 개개인의 노력 덕이기도 하다. 국민들 한 명 한 명의 이 같은 놀라운 성취에 대해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와 그리고 정치는 대체 무엇을 해왔는지, 어떤 ‘백업’을 해왔는지 이제 좀 반성하고 성찰할 일이다. 심지어 한때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아티스트를 관리 통제하려 했고 그렇게 부당하고 끔찍했던 유산이 지금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잦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찬욱, 송강호 두 사람에게 축전을 보냈다는 소식이 다소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지금의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든 정당이 과거에 박찬욱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정당이다. 이 정당의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려면, 한 줄이라도 과거의 행태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어야 옳았다. 그게 정무적으로 든 정치적으로 든 맞는 얘기다. 박찬욱은 대통령의 축전을 받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특유의 히죽, 하는 웃음을 흘리지 않았을까.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검열을 없애고 나서부터이다. 아주 오래된 얘기 같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화에 대한 검열이 없어진 것은 1996년이고 그건 순전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 사회가 열리면, 영화가 좋아진다. 닫힌 사회에서 영화는 주눅이 든다. 위에서 얘기했던 트럼프와 아베, 푸틴과 시진핑을 생각하면 된다. 영화를 보면, 그 나라의 ‘열린 사회와 적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축전을 보내는 대통령을 두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축전보다는 극장에서 영화를 찾아보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대통령이면 좋겠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술과 풍류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그가 속한 정당은 그렇지가 않다. 그 문화적 이율배반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개인적으로는 관심거리다. 

 

박찬욱의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는 평가다. 킴 노박이 나오는 영화, 제임스 스튜어트가 종탑 계단을 오르면서 고소공포증 때문에 현기증을 일으키고 그 바람에 여인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내용의 영화 《현기증》. 정치부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 대면 이런 얘기를 술술, 까지는 아니어도, 비록 더듬더듬거려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아는 대통령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언제 이런 대통령을 갖게 될 수 있을까. 박찬욱에게 보낸 축전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었을까. 청와대는 버렸는데 봉황은 바꾸지 않았을까. 칸에서의 수상 소식이 이상한 우울에 빠지게 하는 날이다. 역시 정치가 좋아야 영화가 신이 난다. 정치는 영화이고 영화는 정치이다.

오동진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