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친구인데 지기(知己)는 아니다- ‘우정’의 어휘론

2022.06.02 06:00:00 15면

 

지난 뉴스의 몇 대목이다.

 

- 정호영 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40년 지기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며, “(윤 당선인이) 대구로 발령을 받고 1년에 두어 번씩 만났다.”고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 ‘40년 지기란 표현은 잘못 알려진, 잘못된 사실’이라며 선을 그었다.

 

- ... “정 후보자도 ‘지기’라는 표현이 민망하다고 언론에 말한 걸로 안다.”

 

지기(知己)냐, 아니냐의 거북한 논란인가. ‘그다지 가까운 사이의 친구는 아니다.’라는 얘기를 저런 식으로 표현하게 된 상황이 이채롭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내 ‘나는 당당하다.’고 강변했던 정호영 장관 후보자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자기를 아는 친구’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준말 知己. 사전에는 친우(親友), 벗과 함께 지음, 심우(心友) 등이 ‘비슷한 말’로 열거돼 있다.

 

어떤 친구가 ‘지기’인가? 안다는 뜻 知 글자가 붙은 지음(知音)의 뜻을 새기면 ‘보통 친구’와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을까? 知音은 대개 知己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중국 춘추시대의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다. 거문고 명인인 백아가 친구 종자기(鍾子期)를 병으로 잃고 슬픈 나머지 거문고 줄(絃)을 끊고(絶)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친구는 백아가 태산(泰山)이나 황하(黃河)를 염두에 두고 연주하면 이내 “태산이 높이 솟았구려.” “멋지다. 유장한 황하의 물길이여.” 하며 즐겼다. ‘소리(音)의 뜻’을 알아채는 知音이 자기 마음속을 알아주는 친구 知己와 동의어가 된 속뜻이다.

 

일반적인 말은 ‘친구(親舊)’이고 우리말로 이를 나타내는 이름은 동무와 벗이다. 허나 흔히 쓰이지는 않는다. ‘동무’는 북한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어서 덜 쓰이게 됐을까? 벗은 약간 문학적이고 고풍스런 표현으로 들린다.

 

그 밖에 동지(同志) 동반자(同伴者) 짝꿍도 있다. 불교에서, 함께 공부하는(도를 닦는) 동료를 부르는 도반(道伴)도 간혹 일상의 표현에 등장한다.

 

벗 우(友)의 갑골문(甲骨文)은 맞잡은 두 손 그림이다. 지금 보는 해서체(楷書體) 友도 두 손 모양이다. 좌(左)의 공(工)을 뺀 두 획은 왼손, ‘또’라는 뜻으로 쓰는 우(又)는 오른손 그림이 변한 글자(기호)다. 악수와도 비슷하다. 한자(의 본디)가 그림임을 늘 잊지 말 것.

 

우정은 자고로 많은 얘기를 생산해왔다. 知己 知音의 백아절현처럼, 죽마고우(竹馬故友) 금란지계(金蘭之契) 관포지교(管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교칠지교(膠漆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등이 고사(故事)에 바탕을 둔 두터운 우정의 표현들이다.

 

우정에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을까? 권력의 세계에는 더 특별한 우정이 있나보다. 친구 사이인데 知己는 아니다, 우리가 목격한 이 논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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