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59. 기치미고개와 넋고개

2022.06.29 06:00:00 9면

 

기치미고개는 경기도 이천시 다산고등학교 앞의 고개 이름이고, 넋고개는 동원대학교가 있는 이천과 광주 사이의 고개 이름이다. 두 고개 이름에는 신립(申砬, 1546∼1592) 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온다.

 


넋고개는 한문으로는 백현(魄峴)이라고 쓴다. 광주시 실촌읍(곤지암읍) 신촌리에 있다.
신립은 임진왜란 때 문경 새재(鳥嶺)를 지키자는 김여물(金汝岉)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충주 탄금대(彈琴臺)에 배수진을 쳤다가 크게 패하여 강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그 후 한 어부가 달천에서 큰 잉어를 잡았는데 그 뱃속에서 신립 장군의 투구 끝에 달았던 금관자가 나왔다. 그 금관자를 시신 대신 관속에 넣고 한양으로 운구하는데, 장군의 넋이 계속 관을 따라와 ‘장군님’하고 부르면 ‘오냐’하고 대답을 하였다. 다산고등학교 앞 고개에 와서 잠시 쉬는데 ‘장군님’하고 부르니 대답 대신 ‘에헴’하고 기침소리가 나서 ‘기치미 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넋고개에 와서는 더 이상 대답이 없어 넋이 나갔다 하여 ‘넋고개’라 하였다 한다.
 
한편, ‘고개가 넓다’고 하여 ‘넓고개’ 광현(廣峴)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여지승람과 중정남한지, 해동지도에도 광현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신립이 패했다는 보고가 있자 선조 임금은 그날 즉시 피난길에 올랐다. 신립이 패전한 곡절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또 생사도 알지 못하였다. 혹은 그가 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 하고, 혹은 남쪽으로 내려가 다시 거사를 도모한다 하고, 혹은 방금 해서(海西 황해도)에 이르러서도 죄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나오지 못한다고 설왕설래하였다.
 
하루는 임금이 여러 신하를 불러 근심스러운 안색으로 이르기를, "적의 기세는 과연 당하기 어렵구나"하였다. 이원부(李元夫)가 도승지로서 일어나 어전에 엎드려 얼굴을 들고 소리를 높여 아뢰기를, "상감께서는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으니 신립은 과연 죽지 않고 해서에 있다고 합니다. 불러 쓰시면, 왜적은 근심거리가 못됩니다"하니, 임금은 허망한 말이라 생각하고 비웃으며 이르기를, "지금 장수감이 없는데, 도승지 같은 사람이 좋지 않겠는가"하였다. 이원부가 또 일어나 절하고 아뢰기를, "신은 진실로 착착(着着 사투리)하여 장수가 될 수 없습니다"하니, 듣는 사람들이 포복절도하였다.

 


신립의 본관은 평산, 자는 입지(立之)이다. 1583년(선조16) 니탕개(泥湯介)를 격퇴하자 선조는 그에게 노모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매월 술과 고기를 보내 주면서 "나이 많은 사람이어서 뜻하지 않게 병을 얻을 염려도 있으니 만약 병이 들면 그 즉시 와서 알리도록 하라. 내가 의원을 보내 구제하도록 하겠다"하였다.

 

왜란이 터지자 신립을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에 제수하고 전송하면서 보검 한 자루를 하사하고 이르기를, "이일(李鎰) 이하 그 누구든지 명을 듣지 않는 자는 경이 모두 처단하라. 모든 병력을 동원하고 군기(軍器)를 있는 대로 사용하라"하였다. 곤지암읍 신대리 산15-1번지에 있는 장군의 묘는 경기도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됐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장군의 묘에는 신도비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1916년에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찍은 망우리 ‘신립장군신도비’ 유리원판이 있는데 이것은 신립의 아들인 신경진(申景禛) 묘의 신도비이다. 신경진은 무인 출신으로서 영의정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이다

 

 

넋고개는 1895년 민비(명성황후)가 살해되고 다음 해 일어난 이천의병 부대가 일본군에 크게 승전한 격전지였다. 고개 위에 의병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김대성 기자 sd1919@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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