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공포영화가 쏟아질 조짐, 그 공포에 대하여

2022.07.14 06:00:00 13면

 

공공기관이나 민간 단체 혹은 기업에서 주최하는 사전제작지원 공모사업에는 적게는 수백 편, 많게는 수천 편의 영화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들어 온다. 제작 지원금의 규모는 실로 다양한데 단편의 경우에는 수백만원이나 천만원 짜리가 있고 장편의 경우는 1억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작품들이 너무 많다 보니 늘 문제는 심사를 하는 것이다. 심사 의뢰를 받고 자료들을 열람하면 항상 입부터 벌어진다. 이걸 다 언제 보나 싶어서이다.

 

응모 작품이 많다는 것은 두 가지이다. 영화를 만들겠다, 영화를 업으로 삼겠다, 영화에 일생을 걸겠다는 사람들이 많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감독의 길이 됐든 시나리오 작가의 길이 됐든 영화계 안으로 들어 오는 등용의 문이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영화 인력의 공급이 많다 보니 나눠 써야 하는 물적 토대는 점점 좁아지거나 할당량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그래도 그나마 이런 저런 기관과 기업에서 자금을 투여해서 모자란 제작 자금을 채워 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일이었으며 그만큼 한국의 영화 인더스트리가 선진화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심사 과정은 백퍼센트 장담할 수 있는 바, 우리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공정이나, 비리는 눈 꼽 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모두 정확하게 심사위원단을 꾸리고 철저하게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의 심사를 통해 내용과 그 수준만으로 작품들을 거르고 골라 낸다. 이것 역시 2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진화된 측면이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이른바 K콘텐츠가 잘 나가는 이유가 있다. 기회가 공정하기 때문이다.

 

응모된 시나리오를, 단편이든 장편이든, 보고 있으면 이게 일정한 트렌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현재 진행중인 심사 작품들에서는 이상할 만큼 공포와 스릴러 장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예컨대 치매 노인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얘기라 하더라도 이 노인이 무의식적으로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는 줄거리로 돼있거나 아파트 안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알고 보니 다 죽은 아이들, 그 유령이라는 식이다. 오싹하다. 인간의 비정상성, 공간이 만들어 내는 공포에 대한 주제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요즘 대체를 이루고 있다. 학교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 회사 안에서의 왕따, 남자나 여자 상사의 성추행이나 필요 이상의 갑질 문제 같은 것은 오히려 조금 지루한 감이 있다. 한동안 다들 다뤄왔던 얘기들이어서 신선하지가 않다. 2,3년 전의 공모사업에는 이 작품도 동성애, 저 작품도 페미니즘과 여성성에 대한 것이라는 식이었다. 매 년 작품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은 영화 작가들의 의식이 늘 변화가 무쌍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또 사회의 변화가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공포와 스릴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내부가 심상치 않다는 것, 온전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건 일종의 경고음이다. 시그널이다. 영화는 대체로 이렇게 시나리오가 작성되고 빨라야 2년이나 3년의 숙성 과정을 통해 극장용이나 OTT용으로 완성돼 대중 앞에 나서게 된다. 앞으로 2024년이나 5년에 갑자기 공포영화가 쏟아지면 우리사회가 지금 현재, 그러니까 2022년과 23년을 정상적인 상태로 보내지 못했음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이들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제작자들이나 투자자들, 프로듀서들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라 판단해 용도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건 반대로 사회가 일정한 자동조절능력, 정상으로의 복원 능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들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느냐, 그렇지 못하냐는 우리 사회의 향방을 읽어 내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공포 영화는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그 사회의 내면을 가장 깊숙하면서도 직접적으로 그려 내는 장르의 작품들이다. 예컨대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 흡혈귀란 존재의 시작은 18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된 여성성을 드라큘라 백작을 통해 벗어나게 하고 싶었던 해방의 욕망을 그리는 것이다. 여성들은 코르셋에 꽉 묶여 살았으며 루마니아의 트란실베니아에서 온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외모의 드라큘라 백작은 그런 여자들의 목에 두 이빨을 박아 넣으며 피를 빨아 먹는다. 그 전 과정의 모습은 공포스럽지만 여성들의 (성적) 해방 욕구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했다. 요즘 등장하는 수많은 좀비영화들도 마찬가지다. 좀비는 어떤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가.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시체들을 말한다. 오로지 먹고 생존하는 욕구만 남아 있는 존재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단적 부르주아와 극우 파시스트들에 기생해 살아 가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좀비처럼 몰려 다니며 선량한 사람들을 해치고 사회의 체제 근간을 흔든다.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돼던 우리 드라마 '킹덤'이 됐든 프랑스 드라마 '라 레볼리쉬옹'이 됐든 다 지금의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일을 빗댄 것이다. 얼마 전 재개봉된 25년전의 일본 영화 '큐어'나 지난 해 만들어진 연상호 감독의 '지옥' 같은 작품 역시 모두 지금 사회가 만들어 내는 이상하고도 괴상한 공포, 그로 인해 만들어진 비정상적 존재들, 그것들의 엽기적 행태와 살인극을 그리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많이 만들어질 조짐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들어 있다. 적어도, 사람들이 극히 불안해 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존재가 의식을 지배하고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나는 지금의 위정자들이 이 신호를 제대로 알아 채고 있는 지 모르겠다. 신호음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한심하다.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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