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22.07.14 10:44:35

75. 디어 헌터 - 마이클 치미노

 

1978년 당시 15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후 4500만 달러를 벌어 들였으니 지금 시가 기준으로 1억 5000만 달러에서 4억 5000만 달러, 즉 우리 돈으로 1700억 원 정도의 돈을 들여 5000억 원 정도의 돈을 번 셈이 되는 것이다. 바로 영화 ‘디어 헌터’ 얘기이고, 이 영화를 만든 마이클 치미노 감독에게는 그 같은 성공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됐던 얘기이다.

 

이후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치미노는 차기작으로 7시간짜리 대작 영화 ‘천국의 문, Heaven’s Gate’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 서부극이 당시로선 천문학적 비용인 3500만 달러가 들었고,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로 마이클 치미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메이저 배급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A)까지 파산하고 말았다.

 

마이클 치미노는 이후 2016년에 사망할 때까지 할리우드에서 기피 인물이 됐고, 끝까지 재기하지 못했지만(미키 루크 주연의 ‘이어 오브 드래곤(1985년)’은 인종차별 논란으로 흥행에서 참패했고, 마이클 치미노와 미키 루크 모두 몰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그의 역작 ‘디어 헌터’는 현대 영화사의 전설로 남아 있게 됐다.

 

 

‘디어 헌터’는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이고 반전(反戰) 영화지만 전투 장면 하나 변변하게 나오는 것이 없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 영화가 국내에서 소개됐던 1980년대에는 친미 영화, 미국 중심의 시선을 가진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까지 했다(80년대 한국사회는 다소 경직된 학생운동 이데올로기가 횡행했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그렇게 볼 영화는 결코 아니다. 반전 베트남 영화의 태두(泰斗) 답게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때나 지금이나 호전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세상을 병들게 하는 광기의 이데올로기인가를 보여 준다.

 

‘디어 헌터’는 두 가지의 텍스트를 교차하며 진행시키는 구조의 작품이다. 하나는 펜실베니아의 클레어턴이라는 비교적 ‘깡촌’ 마을에서의 일이고, 또 하나는 당연히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전자의 중심은 사슴 사냥이고, 후자는 러시안룰렛이다.

 

클레어턴은 철강 공장이 마을의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주력 산업인 곳이다. 펜실베니아는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링컨이 그 유명한 연설을 했다는 게티츠버그가 있는 주(州)이다. 링컨은 진정으로 노예해방을 원했다기보다는, 건국 초기부터 계속해서 주요 공업지대로서 미국의 산업자본주의를 이끌고 나갔던 펜실베니아주에 노동인력을 자유롭게 공급하겠다는, 남부의 흑인을 공장 노동자로 전환시키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던 자본가, 산업주의자였다. 일종의 노예 해방 선언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연설은 결국 미국 자본주의를 향한 대(大)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런 역사와 전통을 지닌 펜실베니아의 철강 회사에서 육체노동자로 일하는 친구 6명의 얘기가 영화 ‘디어 헌터’의 시작이다. 이들은 주변 포코노 마운틴으로 자주 사슴 사냥을 하러 다닌다.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과 니키(크리스토퍼 월켄), 스티븐(존 새비지) 그리고 스탠리(존 카제일)와 존(조지 던자), 액셀(척 아스페그런) 등이다. 이들 중 마이클과 니키, 스티븐은 곧 입대해서 월남전에 나가려고 한다. 그 와중에 스티븐은 동네 처녀 안젤라(루타냐 알다)와 결혼식을 치른다. 러시아계들인(혹은 우크라이나 이주민 후손들인) 만큼 결혼식은 폴카와 러시아 민요로 떠들썩하다. 이 와중에 또 다른 여인 린다(메릴 스트립)는 니키와 사랑에 빠져 있지만 마이클 역시 린다를 연모한다. 그런 마이클의 마음을 니키와 린다 모두 잘 안다.

 

 

3시간 3분짜리 대작인 이 영화의 초반 1시간은 스티븐과 안젤라의 결혼식과 피로연으로 채워져 있고, 입대 전 마지막으로 다음날 새신랑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 다섯 명이 사슴 사냥을 나가 티격태격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젊고, 치기 어리며, 순수했지만, 온갖 말썽을 다 일으키며 살아가는(말썽의 원인은 대개 다 그렇지만 술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긴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베트남전으로 점프 컷 한다.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잡힌 세 명의 친구 마이클과 니키, 스티븐은 악랄한 베트콩(전쟁 당시 이렇게 인간 말종의 남베트남 게릴라들이 실재했었던 것으로 보인다)들로부터 러시안룰렛 게임을 강요당한다. 리볼버 총에 실탄을 한발 넣고 임의로 탄창을 돌린 후 차례로 머리에 대고 쏘는, 잔인한 생존 게임이다. 이 잔혹한 상황과 탈출 과정에서 스티븐은 큰 부상을 입게 되고(그는 하반신과 한쪽 팔을 잃는다) 니키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베트남에 남아 암시장에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며 살아간다. 니키는 이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모두 잃어버린 후이다. 고향 클레어턴에는 오로지 마이클만 온전히 복귀하게 되는데 베트남에 남겨진 니키 때문에 그의 심사 역시 온전치 못하다.

 

'디어 헌터'는 전쟁영화라는 장르영화의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고향-베트남-고향-베트남으로 교차 반복해서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꾸미고 그것을 점프 컷 형식으로 이어 나간다).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에 더욱더 집중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기승전결이라는 고전적 서사구조를 무너뜨리고, 에피소드끼리 충돌하게 해 이야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일종의 정반합(正反合) 구조인 셈이다. 때문에 이야기 단락은 뒤로 갈수록 폭발적인 느낌으로 고도화된다. 사람들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터뜨리게 한다. ‘디어 헌터’의 마지막 장면, 베트남에서 마이클과 니키의 재회 장면이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유이다.

 

 

다친 곳 없이, 거의 기적적으로, 고향에 돌아온 마이클은 온통 환영 일색의 마을 주민들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남아 있던 친구들인 스탠리, 존, 액셀과도 예전 같지 못하다. 돌아오지 않는 니키를 대신해 마이클과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린다는 마트에서 식자재 정리를 하면서(그녀는 마트 직원이다) 울음을 터뜨린다. 린다는 마이클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삶의 끝을 본 사람들, 그 지옥의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들, 전쟁의 와중에서 옆의 친구가, 멀쩡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거나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본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더 이상 충격이 아니게 된 사람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보다 내가 살아남는 게 더 중요했던 시기를 겪었던 사람들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들이 통과해야 했던 비극의 성장통은 그들 인생이 끝날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린다의 말대로 친구들 모두 과거의 순수했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마이클은 더 이상 사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명색이 디어 헌터가 더 이상 사슴 사냥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마이클과 니키, 스티븐이 겪었던 베트남전은 대략 1973~1975년이다. 1955년에 발발해 1973년, 닉슨의 하야와 함께 사실상 서서히 베트남에서 발을 빼던 시기에 오히려 이들은 전쟁에 참여한 셈이다. 이들은 전투를 겪었다기보다는 지옥을 겪었으며 인간이라는 종(種)의 끝을 봤다.

 

전쟁은 인간을 인간이 아닌 인간, 곧 괴물로 만든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디어 헌터’로 전쟁영화가 얼마나 반전의 프로파간다로 쓰일 수 있는지 증명해 냈다. 반전영화의 위대한 걸작이며 반전영화의 '죄와 벌'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백 년 넘게 읽히듯이 마이클 치미노의 이 영화도 백 년이 넘게 보일 것이다. 이런 ‘가르침’이 있음에도 세상엔 여전히 호전주의자 천지이다. 선제공격론자들이 넘쳐 난다. 영화로 배우라.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오동진 ccbbk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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