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손흥민보다 손웅정

2022.07.21 06:00:00 13면

 

 

손흥민은 불세출의 축구 영웅이다. 공을 간결하게 다루지만 엄청난 내공에서 비롯한다는 걸 축구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는 결과로 입증되었다. 지난 시즌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모여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늘 해맑게 웃으면서 주변을 챙기는 그의 모습이 더해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진정한 스포츠 영웅이 갖춰야할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그를 길러 낸 아버지 손웅정 씨에 대해서는 억척 아버지 아니면 전근대적 스파르타 식 지도자 정도의 평가만 있다. 그런데 최근 그의 발언은 우리의 편견을 여지없이 깬다. 그는 춘천에 손흥민 거리를 만들자는 강원도 신경호 교육감의 제안에 "(축구를 마치면 손흥민은)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업적이 있으면 사회의 영웅화 작업에 쌍수 들고 동조하는 풍조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 한마디 발언은 손 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동시에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그는 성공이나 명예나 물질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고 웅변한다.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가치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중심에서 벗어나기, 탈중심(脫中心). 결코 쉽지 않은 냉철한 통찰이지만 이는 우리 시대의 유행어가 돼버린 인문학 정신일 터이다.

 

알고 보면 인문학은 인간답게 잘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에서 성공만 추구하다 인간다움을 잃는 예를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인간다움을 잃음으로써 손에 쥐게 된 성공을 한 순간에 잃는 예도 마찬가지로 많이 본다. 가치의 전도가 불행의 원인인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돌이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손웅정 씨가 지난해 말 펴낸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예상치 않은 길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게 곧 성공이라고 단언한다. 삶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성공이 아닌 즐거움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끝내 "축구라는 매개로 의도하는 모든 행위를 딱 한 마디로 줄이면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삶의 본질에 닿으려고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인간다움의 완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쯤이면 그가 손흥민 거리 조성을 반대하는 이유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명확해진다. 그것은 깊은 사유에서 오는 절제와 겸양일 것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편에 나오는 '오상아(吾喪我)'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진정한 자유.

 

손흥민은 그야말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꿈을 주고 위안이 되는 스포츠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오늘은 아버지의 철학이 주춧돌이 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기술과 이기는 법보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더 중요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을 존중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손웅정 씨에게서 우리 시대의 인문학 표본을 읽는다. 책 속에 있는 평면적인 것이 아닌, 꿈틀거리는. 그래서 더욱 빛나는.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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