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우리는 붕괴하고 있어요”

2022.07.25 06:00:00 13면

 

세상은 늘 한 번에 망가지지 않는다. 서서히 붕괴한다. 그건 마치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형사 해준(박해일)이 서래라는 이름의 조선족 여인(탕웨이) 때문에 붕괴하는 것과 같다. 붕괴는 물리적인 파괴보다 해준처럼 참담함이라는 정서적 공습으로 다가선다. 붕괴는 간조(干潮)가 끝나고 밀물이 차오를 때 마냥 서서히 스며든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렇다.


예컨대 1. 이전 정부 때까지 정권의 핵심 공간이었던 청와대를 지금의 정부는 베르사유 궁전처럼 바꿔 관광 장소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이미 그곳을 버린 자들이지만 공적인 공간을 자기들 멋대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 일단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적어도 공청회 같은 것, 여론을 모으는 척 같은 것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게 누구 발상이고 누구 아이디어인지, 생각한다는 것이 기껏 베르사유라니, 그 상상력에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왕정 시대의 가장 화려했던 면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그건 이 공간이야말로 이중의 역사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넷의 철없는 폭정(暴政)을 후세가 계속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넷은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이 깨지고 프랑스혁명이 시작된 후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만약 ‘청와대=베르사유化’의 아이디어가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를 법적으로 소추하겠다는 내심을 담고 있는 아이디어라면 그건 역사적 인식이 매우 잘못돼 있는 동시에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낸 아이디어라면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넷으로 간주하고 있는 역모와 같은 행위일 수 있다. 그런 등등의 ‘복잡한 내심’을 생각하지 않고 이 아이디어를 용인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정부가 얼마나 무지하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인 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매사에 똥인지 된장인지, 욕인지 칭찬인지, 독인지 약인지를 가려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예컨대 2. 일상에서 미세한 변화의 바람이 느껴진다. 국내에 개봉된 할리우드 직배(워너 브라더스 직접배급) 영화 ‘엘비스’의 흥행 참패 같은 것이다. 이 영화는 4, 50년대 미국의 정체된 보수성을 음악과 춤, 패션으로 ‘흔들어 대려’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얘기를 다룬 일종의 전기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일본의 대책없는 ‘또라이’ 작가 무라카미 류의 명언 아닌 명언이 떠오른다. 혁명은 상상력에서 나온다.라고 그는 자신의 어느 소설에서 썼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혁명은 총구에서 나온다, 를 바꾼 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난리법석 춤판, ‘(아랫도리) 털기 춤’의 혁명은 결국 기독교의 허위의식, 보수주의자들의 거짓된 윤리의식, 기득권을 지키려고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회적 통념들을 깨부수게 했다. 그걸 깨부수게끔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다. 이때의 젊은이들이 60년대로 넘어가 앵그리 영맨이 되고 비트 제너레이션으로 컸다. 잭 케루악 같은 시인이 되고 톰 헤이든 같은 학생운동가, 장 뤽 고다르 같은 영화감독이 됐다. 그리고 그들이 68 혁명을 만들어 냈다. 비틀스의 존 레넌 얘기처럼 엘비스가 없었다면 비틀스도, 롤링스톤즈도 없었다, 는 말이 맞다. 세상의 혁명은 마르크스나 레닌, 마오쩌뚱이나 호찌민, 체 게바라에서가 아니라 바로 엘비스에서 시작되고 분출됐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엘비스’를 국내 젊은이들이 보지 않는다. 유독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엘비스를 몰라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성세대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엘비스’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이다. 윤석열 정부냐, 문재인 정부냐의 여론조사에서 유독 20대에서만이 윤석열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아이들, 젊은 애들의 무지함을 탓할 것 없다. 모두 기성세대, 우리 탓이다. 다 내 탓이로소이다, 이다.

 

예컨대 3. 코로나 19가 다시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정치 방역을 하지 않고 과학 방역을 하겠다며 자율에 맡기겠다고 한다. 질병관리청장이라는 사람은 이제 코로나19는 통제위주의 관리체계를 벗어났다는 식으로 말한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PCR 검사를 하러 갔다가 비용이 5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린다. 이제 코로나도 돈이며 자본주의임을 실감하게 된다. 돈만을 생각하는 정부를 뽑았기 때문이다. 돈 있는 자만이 살 수 있고, 결국 이제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는 정부를 머리에 이고 살고 있는 셈이다. 

 

붕괴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여러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으며 따라서 각자의 삶이 붕괴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어찌 할 것인가.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87년 역작 '언터처블'에서 노련한 순경 짐 말론(숀 코넬리)은 시카고의 갱 두목 알 카포네가 보낸 청부살해업자의 공격을 받는다. 그는 숨이 넘어 가기 직전 자신과 팀을 이뤄 알 카포네 조직을 좇던 검사 엘리옷 네스(케빈 코스트너)의 멱살을 잡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응? 어떻게 할 거냐고?” 요즘 자꾸 숀 코넬리의 음성이 귓가를 맴돈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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