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의 광고로 세상읽기] ⑦ 광고와 정치, 그 운명적인 관계

2022.07.29 06:00:00 16면

1.

까마득한 옛날부터 광고는 정치와 관계가 깊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사 광고는 기원전 5000년 경 이집트 고대왕국시대의 전쟁 승리화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파라오가 적을 무찌르는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넓게 보았을 때 오늘날 정치광고 포스터의 원시적 형태다. 기원전 4,000년 경 아시리아 왕국의 전승도(戰勝圖)도 마찬가지다. 부조(relief)로 새겨진 이 작품에도 천하를 지배하는 왕의 권위에 대한 선동적 메시지가 선명히 드러나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광고와 정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캠페인(campaign)이란 용어 자체가 그렇다. 평야라는 뜻의 라틴어 ‘캄푸스(campus)’에서 비롯된 이 단어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관된 계획 하에 일정 기간 전개하는 정치적, 상업적, 기타 일련의 활동이나 운동”으로 정의된다. 선거를 치를 때 많이 쓰는 말이지만,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분야는 오히려 광고 영역이다.

 

광고주가 상품광고를 행하는 목적은 3가지다. 소비자에게 특정 브랜드의 이름과 특성을 알리는 것. 그것을 경쟁제품보다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매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정치의 꽃, 선거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후보자의 매력과 정책을 제대로 알리고, (경쟁 후보자보다) 더 좋아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투표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목적으로 실시된다.

 

광고하는 상품이 아무리 탁월한 효능을 갖췄다 강조해도 소비자는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그것이 나한테 분명한 경제적·심리적 혜택을 줄 것이란 확신이 생겨야 구매행동에 나선다. 선거캠페인도 닮았다. 임기 동안 유권자의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하고 공감 가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다.

 

물론 광고가 선거캠페인의 모든 것은 아니다. 뉴스보도, TV토론도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문제는 방송, 신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정보 전달의 간접성과 왜곡 가능성이다. 이에 반해 광고는 후보자가 메시지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의미 자체가 다르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광고의 전문성 활용이 매우 미흡한 분야가 한국 정치라는 점이다. 우리 광고 산업의 규모가 세계 10위 안에 진입한지 오래다. 전략과 크리에이티브에서 국제적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핵심 선거에서 광고 캠페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치 선진국들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프로페셔널들이 참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적 차원이거나 산발적 수준이다. 실무능력과 경험 보유한 광고전문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정치권 전반에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2.

예를 들어 지난 3월 9일 치러진 제 20대 대선을 보자. 이 선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당연히 유권자 직접 접촉이 최소화되었다. 이런 경우 광고와 PR로 대표되는 비대면 설득수단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한다. 현실은 어떠했는가. 자웅을 겨룬 양대 정당의 캠프 모두에서 과연 얼마나 전략적이고 정교한 광고캠페인을 실행했는지에 의문이 든다.

 

패배한 민주당 진영이 특히 그랬다. 설득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아니라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서 이름 얻은 이를 홍보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선거에서 차지하는 광고의 비중과 그것을 성공시키는 경험의 절대성에 대해 정치권이 얼마나 둔감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생산 콘텐츠의 외적 유사성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이 광고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양자는 전략적 출발점, 발상, 유권자 설득 파워에 있어 층위가 다른 존재다. 비유하자면 태권도 대회 우승자를 유도 대회에 출전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다이아몬드와 베이츠(Diamond & Bates)는 선거 광고캠페인은 4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지적한다. 첫째, 유권자에게 후보자를 소개하는 단계다. 상품광고로 따지면 브랜드네임을 알리는 것이다. 둘째는, 선거에 관련된 핵심 의제에 대한 주장을 하는 단계다. 셋째는, 네거티브 캠페인 등을 통해 경쟁상대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필요할 경우 공격하는 단계다. 마지막 넷째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진정한 비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우리 후보임을 강조하는 단계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지난 대선은 어떻게 평가될까. 양대 진영 모두에서 셋째 단계까지는 도달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넷째 단계까지 성공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무엇보다 ‘시대정신’이라 통칭되는, 임기 내 국가와 국민 삶의 도달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 후보를 찍으면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지겠구나!”라는 비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다. 전설적 카피라이터 클로드 홉킨스는 이렇게 갈파한다. “사람들이 감기약을 구입하는 이유는 감기약의 탁월한 성분 때문이 아니다. 그 약이 나의 고통을 즉각적으로 없애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선거캠페인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 아닐 수 없다.

 

3.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이 지점에서 국내외 정치광고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현실 정치에 광고가 본격적으로 개입한 첫 번째 사례로 들어지는 것이 1952년 미국 34대 대통령 선거다. 역사상 최초로 TV를 이용한 정치광고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 아들레이 스티븐슨 역시 TV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장황하고 아마추어적인 공약 남발에 그쳤다. 반면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 후보 아이젠하워는 당대 최고의 프로페셔널 광고인들을 동원했다. 그가 펼친 캠페인의 제목은 “아이젠하워가 미국에 대답합니다(Eisenhower answer America)”였다. 후보자가 핵심 현안에 대한 시민들의 질문을 받고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때까지 상업광고에나 쓰이던 전문적 카피라이팅 레토릭이 등장한 것도 눈에 띈다. 아이젠하워(별명 Ike)의 캠페인 슬로건은 “I Like Ike”였다. 모운법(母韻法, Assonance)과 각운법(脚韻法, Rhyme)을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하나의 문장에 포함된 세 단어 모두에서 ‘ai'라는 모음을 반복함과 동시에, 두 번째 단어 Like와 세 번째 단어 Ike가 ’k' 발음을 반복했다. 이렇게 하면 슬로건이 쉽게 기억되는 건 물론 운율적 쾌감이 생긴다. 사람들 마음 속에 아이젠하워에 대한 친근감과 호감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더 유명한 선거광고는 존 F. 케네디의 뒤를 이어 제 36대 대통령이 된 린든 B. 존슨의 것이다. 1964년 선거에서 그는 공화당의 극우파 후보 베리 골드워터를 꺾고 당선된다. 이 때 존슨 캠프에서 만든 만든 '데이지 걸(daisy girl)' TV광고는 역사에 기록될 성공을 거뒀다.

 

 

60초짜리 광고가 시작된다.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까 콧잔등에 주근깨 가득한 귀여운 금발 여자아이가 나온다. 들꽃이 만발한 벌판에서 데이지꽃잎을 뜯으며 숫자를 세는 소녀. 하나, 둘, 셋… 아홉까지 센 순간 카메라가 아이의 눈을 클로즈업한다. 놀라서 치켜뜬 소녀의 눈동자에 끔찍한 장면이 비친다. 핵폭탄의 무시무시한 폭발이다. 뒤이어 존슨 후보의 신뢰감 넘치는 굵직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우리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 것인지 암흑 속에서 살 것인지, 서로를 사랑으로 포옹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이번 선거에 달려있습니다."

 

이 광고는 1964년 9월 7일 NBC 방송의 전파를 타고 딱 한번 방영되었다. 하지만 파문은 엄청났다. 광고 집행 이튿날 3대 방송사(ABC, CBS, NBC)의 저녁 메인뉴스 모두에서 해당 광고를 편집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 경쟁후보였던 골드워터는 소련에 대한 선제 핵공격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 같은 극우적 선동의 위험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광고 한 방으로 골드워터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었다. 존슨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 되었다.

 

4.

못지않게 유명한 정치광고 하나가 영국에서 전개되었다. 1979년 광고대행사 사치 앤 사치가 주도한 캠페인이다. 신자유의주의(neoliberalism)의 원조라 불린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 정권을 출범시키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이 선거 승리 이후 대처 정권은 11년에 걸친 대대적 민영화와 산업 국유화를 강행한다. 공교육 보조 철폐, 의료보험제도와 실업급여 축소 등 강력한 우향우(右向右) 정책을 펼친다. 대처주의(Thatcherism)의 시작이었다. 영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의 분수령이 이 캠페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선거포스터였다(그림 3). 앤드류 러더포드가 아이디어를 내고 찰스 사치가 카피를 썼다. 메인 비주얼은 직업소개소 바깥에 길게 줄을 늘어선 실업자 행렬이다. 화면의 절반을 차지한 두껍고 큰 헤드라인은 “노동당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Labour isn’t working.)”. 집권당이던 노동당의 경제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시기는 1974년 발생한 오일쇼크 여파로 스태그플레이션의 파괴력이 정점에 달한 때였다. 원유 가격 폭등과 상품 제조 원가 상승으로 물가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따른 판매부진, 재고 급증, 생산위축이 다시 조업 중단과 노동자 해고로 이어졌다. 단순히 정책 실패라고 볼 수 없는 장기적, 복합적 불황국면이었던 게다.

 

노동당은 격렬히 반발했다. 무엇보다 포스터의 사진 자체가 조작됐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버렸다. 이 포스터가 유권자들에게 던진 쇼크는 엄청났다. 역사학자들은 노동당 패배의 핵심 원인으로 당해 연도에 터진 전국적 파업과 소요 사태의 악영향을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치 앤 사치의 캠페인 또한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 선거 포스터는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격적 정치광고의 전범(典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5.

우리나라에도 전설적 정치광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를 추천한다. 첫 번째는 1997년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의 캠페인이다. 두 번째는 2002년 선거 때 방영된 노무현 후보의 그것이다.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 아이디어의 참신성, 유권자 마음을 흔든 공감능력에서 2022년 치러진 대선 광고캠페인보다 훨씬 수준작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서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정치광고가 개시된 것은 1963년 제 5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2년 후 치러진 선거다. 대통령 선거법이 제정되고 신문을 통한 정치광고가 처음 허용된 것이다. <그림 4>가 당시 기호 3번으로 출마한 박정희 후보의 신문광고다.

 

 

대통령 선거에서 TV 정치광고가 허용된 것은 1992년이었다. 3당 합당을 통해 세력을 부풀린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당선된 선거였다. 직접적인 공약 제시를 넘어 후보에 대한 이미지 광고기법이 처음 등장한 시점이었다. 대전환이 일어난 것은 1997년 제 15대 대통령 선거였다. 후보자 별로 총 44회의 방송연설이 허용되었다. 거기에 더해 획기적 수준의 광고 캠페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의 회심작 “DJ와 함께 춤을”이 그것이었다. 재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그의 이미지는 투쟁적이고 강성이었다. 그러나 선거캠페인은 달랐다.

 

당시 히트곡 DJ DOC의 노래를 패러디한 이 밝고 소프트한 광고에서 김대중은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DJP연합을 통해 합류한 김종필과 박태준, 차기 대통령 노무현의 얼굴까지 잠깐 등장하는 이 광고는 “꼭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준비된 대통령 기호 2번 김대중”이란 카피로 마무리된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유권자를 설득하여 표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정치광고가 나타난 것이다.

 

 

6.

2002년 대선은 개혁민주 세력의 연승이었다. 이때 등장한 광고가 “노무현의 눈물”이다. 시리즈 캠페인 가운데 첫 탄이었다. 존 레논의 ‘이메진(Imagine)’ 노래를 배경으로 화면이 열린다. 감성적 B.G.M과 자막으로 메시지를 보여주다가 말미에 노무현 후보가 한 줄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두 번 생각하면 노무현이 보입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마무리한다. 유권자 가슴을 찡하게 울린 완성도 높은 감성광고였다.

 

 

제 2탄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라는 핵심 카피 아래 60초 광고 거의 전부를 노무현이 직접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는 장면에 할애했다. 참신하고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투표일 전날 방영된 3탄도 절묘했다. 제목은 ‘노무현의 편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여성 독창과 함께 “오늘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라는 후보의 육성이 나온다. 뒤이어 그가 오랫동안 꿈꾸었고 국민과 더불어 꾸고 싶은‘시대정신’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세상. 어느 꿈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어느 꿈은 아직 땀을 더 쏟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광고 명언 가운데 필자가 유독 좋아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how to say)라는 표현 이전에 무엇을 말할 것인가(what to say)라는 주제가 더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치광고는 정확히 특정 공동체의 당대 정치 수준을 반영하는 콘텐츠일지도 모른다. 국민을 위한 절박한 마음, 반드시 더 나은 세상 이루겠다는 꿈이 있어야 멋진 정치광고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에서는 그렇게 가슴 두근거리는 캠페인을 꼭 봤으면 좋겠다.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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