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징검다리] 윤석열 정권의 교육홀대, 이대로는 안 된다

2022.09.16 06:00:00 13면

 

 

윤석열 정권의 교육홀대가 수인한도를 넘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한국교육이 갈 길을 잃고 병증이 깊어지게 생겼다. 우선 교육부 장관의 장기 공석상태부터 해결해야 한다. 사회부총리를 겸하는 중요부처 장관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지금의 정권상황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래도 교육전문성이 없는 교육부 장관은 안 된다. 가까스로 한 달 재임했던 박순애 장관은 행정학 교수 출신이었다. 교육비전문가답게 매우 예민한 초등학교 입학연령 단축 안을 불쑥 내놨다가 교육계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고 사실상 인책 사퇴했다. 박순애 장관과 짝을 이뤘던 첫 교육부차관도 교육비전문가 행정관료 출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심보로 비전문가 장차관에게 교육부를 맡겼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오만과 독선이 첫 장관경질사태를 초래하며 정권운영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전문가의 교육부장차관 임명을 두고 교육부 해체를 염두에 둔 의도적 인사조치라는 정권엄호 해석도 없지 않았다. 유초중등교육을 시도교육감에게 넘기고 국가교육위에 국가공통 기본교육과정을 넘겼으니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고등교육을 독립위원회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교육부를 사실상 해체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다. 헛소리다. 헌법이 요구하는 교육의 전문성은 교원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교육당국의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육전문성이 없는 교육부장차관의 임명은 그 자체로 위헌적 요소가 강하다. 윤석열 정권이 교육부해체 구상을 갖고 있었다면 질서 있게 공론화과정을 거쳐야지 교육부와 인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전문가를 함부로 장차관으로 임명할 게 아니었다. 비전문가에 의한 교육부 신탁통치는 교육부 모독을 넘어 교육 모독이고 위험한 도박을 넘어 위헌적 만용이다.

 

그뿐 아니다. 지난 9월 3일 국가교육위원회를 위원장 포함 총 31명의 초미니 중앙행정기관으로 출범시키겠다는 직제령 안이 입법 예고된 사실도 윤석열 정권의 교육홀대의지를 더할 나위 없이 보여준다. 국가교육위는 백년대계 교육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토대를 두고 신설됐다. 중장기 교육발전계획과 국가교육과정 수립, 그리고 교육쟁점에 대한 공론화과정 진행과 사회적합의 증진이 주요업무다. 국가교육위의 초정권적 특성에 맞춰 위원구성에서도 최대한 정치색을 빼고 다양한 교육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고르게 대표되도록 설계됐다. 비상임위원을 18인이나 두게 된 이유다. 윤석열 정권은 위원장과 상임위원 2인, 비상임위원 18인으로 구성된 국가교육위에 사무처장을 포함해서 28명의 사무처직원을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나마 기관운영 사무를 맡을 일반행정직이 17명이고 교육관련 업무를 수행할 교육전문직은 11명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권은 한마디로 국가교육위 안락사 직제령 안을 내놨다. 나는 20년 전 초대국가인권위원 시절 신생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제요구안을 놓고 당시 행자부와 힘겹게 줄다리기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사무처 28명 직제예고안을 접하고는 너무나 충격이 커서 할 말을 잃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명색이 대통령소속 독립 합의제중앙행정기관인데 사무처직원은 28명이 전부다. 교육의 미래설계와 사회적 합의라는 중대업무를 맡긴 신생 합의제중앙행정기관이 국 하나 없이 과만 셋이 있는 직원 28명의 초미니 사무처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무처직원이 28명이라면 서울교육청의 초등교육과 직원 수보다도 적고 대통령자문기구에 지나지 않던 국가교육회의 직원 수보다도 적다. 이런 초미니 대통령소속 합의제중앙행정기관은 일찍이 없었다.

 

단언컨대 직원 28명의 초소형 사무처조직으로는 국가교육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해도 어떤 일도 시늉내기 이상으로 하기 어렵다.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고도의 사명감과 전문역량을 갖고 있더라도 사무처의 보좌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업무수행이 크게 제한될 것이다. 18인의 비상임위원 중에도 적극적 활동의지를 가진 이가 더러 있겠지만 회의와 표결 참여 외에 어떤 일도 벌일 수 없을 것이다. 입법 예고된 총31명 직제령이 확정될 경우 국가교육위는 누구도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유명무실한 유령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실은 이것이 윤석열 정권이 속으로 바라마지 않는 국가교육위의 모습일 것이다. 국힘당 입장에서 국가교육위는 공수처와 더불어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귀태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를 최악의 상황에서 건지기 위해 누가 무엇을 해야 하나? 당장 시급한 건 교수단체, 교사단체, 학부모단체, 학생단체, 교육감 등 교육주체들이 힘을 합쳐 현재의 국가교육위 고사 직제 안에 반대하는 여론의 압력을 조직하는 일이다. 이에 힘입어 곧 구성될 국가교육위가 첫 회의에서 합리적인 정원증원 요구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해서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시일이 촉박한 걸 감안할 때 지금으로서는 국가교육위법을 제정한 국회와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 줘야 한다. 입법 예고된 직제령이 과연 국가교육위 입법취지에 맞는지를 관련 상임위에서 대통령실과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추궁하며 사무처직제 수정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공수처에 이어 국가교육위마저 유야무야한 군더더기로 전락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곽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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