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선은 악 숨기기 위한 액세서리

2022.09.22 06:00:00 13면

 

 

넷플릭스 6부작 수리남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칼과 총으로 사람을 찌르고 쏘는 거대한 액션물이지만 구성이 치밀해 끝날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스토리텔링의 교과서 격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메시지 중 으뜸인 '캐릭터보다 플롯'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빼어난 스토리텔링 극답게 인과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드러난다. 극중 전요환(황정민)은 중남미 소국 수리남에서 교포 등을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는 목사인데 할렐루야, 순수한 마음, 형제님 등의 말을 일상적으로 구사한다. 하지만 목사라는 직업은 마약 밀매를 위한 위장술이다. 이 반전에 주목해야한다. 전요환은 그 많은 직업 중에서 하필이면 왜 목사를 택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수리남의 메시지일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없다면 수리남은 한낱 폭력물로 끝났을지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목사는 하나의 직업이지만 종교적·사회적 권위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목사가 부르짖는 말은 세속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가닿고 싶은 순수하고 신성한 세계일 터이다. 이쯤이면 전요환이 왜 자신을 목사로 위장했는지 쉽게 이해된다. 마약 밀매라는 거대한 악의 세계를 숨기기에는 목사만한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에 대한 대단한 희화화이자 풍자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선을 표상하는 것들에 대하여 자연스레 의심해야 한다는 권유로 작용한다. 세속적 사람들을 향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꾸짖고 회개하라고 목소리 높이는 목사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순수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어쩌면 보통 사람들보다 악의 세계에 더 가까이 있지 않을까?

 

의심은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불의할 수 있고, 공정을 내세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불공정할 수 있고,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비민주적일 수 있고...

 

굵직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공정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당은 반공정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부터 인사, 대통령 부인에 대한 사법리스크 등 반공정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이로써 이들이 내세운 공정은 그저 하나의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민주당도 최근 민생을 내세우고 있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자신들이 앞장서서 확인해 주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라는 사적인 일에 공당이 전력을 쏟는 것 자체가 반민생이기 때문이다.

 

고상하고 거룩한 가치가 썩고 음험한 치부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이런 현실을 수리남은 콕 집어서 이야기 속에 숨겨놓았다. 우리는 말을 거꾸로 이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노자의 경구는 마치 지금의 세태를 위해 마련된 것이라는 착각마저 인다. '진리를 진리라고 하면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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