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재해 보상을 위한 사업주의 협조 의무

2022.09.22 06:00:00 9면

-산업재해 근로자의 입증의 문턱에서 한 번 더 좌절하게 하는 사업주 협조 규정

 

권리는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책임을 진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는 산재보상을 받기 위하여 자신의 업무와 사고, 질병 간의 상당 인과관계가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여야 한다. 특히나 직업병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병되기 때문에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 근로자가 발병 원인이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더욱 까다롭다. 때문에 재해 근로자는 의학적인 영역보다 우선하여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고되었는지 주장하는 데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때 필요한 근로 환경, 직업력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사업주가 가지고 있기에 근로자는 정보와 자료 접근 등에 있어서 불리한 지위에 있다. 재해근로자가 사망한 경우라면 유가족이 입증책임을 부담하므로 정보의 비대칭성은 더욱 심해진다.

 

많은 사업주들이 근로자의 산재신청에 가지는 반감 및 비협조적 태도 역시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을 강화시킨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택배 노동자 A씨의 사례에서 A씨의 유족과 대리인은. 뇌출혈과 과로와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고인의 근무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노조 관계자와 고인이 일한 터미널에 방문했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직원들이 막아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평소 이용하던 시스템도 접근이 차단되었다.

 

사업주에게 협조 의무를 부과하는 법적인 근거는 없는 것일까?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 입증에 필요한 협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6조 제2항(사업주의 조력)은 "사업주는 보험급여를 받을 자가 보험급여를 받는 데에 필요한 증명을 요구하면 그 증명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런데 왜 많은 사업주들은 협조를 거부하는 것일까? 해당 법규정은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부과 규정이 없다. 본칙에 법률상 의무를 규정하면서 그 위반에 대한 벌칙 조항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훈시적 규정의 경우 최소한 다른 제재 수단이 입법에 반영되어야 한다.

 

정보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근로자가 모든 업무 부담과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도록 규정하면서 사업주의 조력의무 규정은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는 현 상태는 사실상 근로자의 권리구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중략)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있다. 입증의 문턱도 버거운 재해 근로자에게 산재보상보험법은 ‘신속’도 ‘공정’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전문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재해근로자에게 입증책임을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가혹하기에 산재의 입증책임 문제는 꾸준히 뜨거운 감자이며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이 판결(2017두45933 전합)에서도 여전히 근로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나, "산재보험 소송에서는 인과관계의 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빈번하다"며 "그 규명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근로자에게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은 공평의 원칙과 정의 관념에 반하고 근로자의 보호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정보의 비대칭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이유로 입증책임을 사업주에게 부담시키는 것 또한 마냥 공평한 해결책은 아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의 복지와 산재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대위하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가지기에 당사자는 근로자와 근로복지공단이므로 근로자와 사업주가 다툼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증책임을 어느 일방으로 전가하는 것만이 명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근로자의 입증책임을 공단과 분배하여 입증부담을 완화하고, 사업주의 조력의무에 대한 벌칙규정이나 제재 수단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지난해 사업주의 조력의무 위반 시 벌칙규정을 포함한 일부 개정안이 발의 되었으나 여전히 계류 중으로 조속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훈시적 규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법상 제재 수단을 사업주의 조력의무 규정에도 마련하여 최소한 재해 근로자가 사업주와 실질적으로 대등한 지위에서 그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시원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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