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유동규 씨를 위한 변명

2022.10.27 06:00:00 13면

 

“의리? (웃음)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게 없더라. 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거 같다. 구치소에서 1년 명상하면서 깨달은 게 참 많다. 내가 너무 헛된 것을 쫓아다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장동 사기사건의 종범인 유동규 씨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쏟아낸 말을 중앙일보가 보도한 것이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대장동 주범 의혹이 일고 있는 자들을 향해 자신과 연루된 범죄 내용을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실명을 거론해 그 파장은 가히 메가톤급이다. 그의 말에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자신을 손절한,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깊이 배어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자기성찰도 크게 자리 잡고 있어 반전을 보여준다. 이 반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 구조의 중요 요소여서 유동규 씨가 오랜 동안 화제가 될 지도 모른다.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차용될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대장동의 음습함을 거의 사실에 가깝게 그려 화제가 되었던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에는 없는 캐릭터이자 반전이어서 꽤 매력적일 것이다.

 

아무튼 반전은 유동규 씨의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그는 대장동 부동산 개발 사기사건의 행동대장 격으로 청춘을 보냈다. 룸살롱에서 살다시피 하며 해서는 안 될 짓을 의리의 이름으로 숱하게 자행해 왔다. 성남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고 하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늠이 되고도 남는다. 그 끝은 구속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그는 구속 만기로 풀려나자마자 과거와의 절연을 선언한다. "그런 짓을 이제 안 하려고 한다. 이제 안 하려고….”, “다 진실대로 가게 돼 있다고 생각한다. 양파가 아무리 껍질이 많아도 까다보면 속이 나오지 않나" 등 쉽게 하기 어려운 말들을 던진 것이다. 고통이 뒤따라야 나올 수 있는 고해성사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그는 구치소에서 몇 개월 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는가하면 자살을 기도하는 등 많은 번민의 시간을 가졌다고 고백하였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통한 형량거래로 유동규 씨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주로 민주당 쪽에서 검찰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를 의식한 서울중앙지검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어 플리바게닝을 부인했다. 공방은 여전하지만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 씨의 자기성찰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유동규 씨의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벌』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를 연상시킨다. 죄를 지었는데 특정 관념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속죄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점이 닮은꼴이다. 유 씨는 의리를 쫒다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죗값을 받기로 했고,라스콜니코프는 사회악 퇴치를 위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뒤 창녀인 소냐의 구체적 삶을 접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았던 것이다.

 

유동규 씨를 두둔해야할 이유나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죄를 지었으므로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다행히도 그는 죗값을 받고 남은 여생을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피력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죄를 짓고도 죄의식은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한 이 나라 정치인들과 상류층이 많은 상황에서 그의 죄의식은 죽비와 같지 않은가?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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