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칼럼] 가슴 속에 검붉은 강이 흐른다

2022.11.15 06:00:00 13면

 

1.

그날 밤은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듣자마자 나를 덮친 것은 공포였다. 2가지가 뒤섞인 두려움이었다. 첫 번째는 만에 하나 서울 있는 아이의 안전에 대한 그것. 핏줄을 향한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두 번째는 예전에 분명히 느낀 적이 있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선명한 공포감이었다. 세월호 참극이 데자뷰처럼 떠오른 것이다. 어떤 거대하고 더러운 힘이 종이장처럼 세상을 구겨 부수는 것을 목격하는 심정.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초조한 심정으로 다시 재발신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는다. 아비의 초조함과 달리 아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른 시각에 왜 전화를 했는지 아는 눈치다. 이태원에는 안 갔다고 집에 있었다고, 먼저 나를 안심시키고 위로한다.

 

무능과 기복적 망상에 전적으로 의지한 박근혜 정권에 이어 윤석열 정권에서 다시 참극이 일어났다. 우연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하여 권력 핵심과 하부 실행체계 전체가 (역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둔감하고 얼이 빠졌기 때문이다.

 

2.

막을 수 있는 참극을 못 막은 것이 문제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사후 대처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건 발생 즉시 5일 간의 국가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실제 행동은 어떠했는가.

 

합동분향소의 이름을 <이태원 사고 사망자 분향소>라고 붙였다. 이번 참사의 성격을 우발적, 자연발생적 죽음으로 몰아가기로 처음부터 작정한 게다. 세상과 사람과 사건에 대하여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正名)'이 인식과 행동의 출발점이란 공자의 정명철학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이 같은 이름붙이기 하나에서부터 벌써, 스스로 책임을 부정하고 시민적 비판의 예봉을 무디게 만들려는 의도가 명백했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행정안전부는 공문을 통해 각 시·도와 중앙부처에 ‘근조’라는 글씨가 없는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내려 보냈다. ‘근조’란 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연에 의한 사고이니 그런 슬픔조차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뜻이다. 공무원들이 글자가 적힌 리본을 거꾸로 돌려다는 서글픈 소동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모두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이다. 최소한의 안전관리만으로도 능히 막을 수 있는 일을 손놓아버렸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의 떼죽음을 방치했다. 이 비극적 죽음의 본질이 그 같은 미봉책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기괴한 일 아닌가.

 

3.

157명의 젊음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직까지 희생자 명단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행태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가. 참극 발생 이틀 만에 경찰청 정보국이 만든 <정책참고자료> 대외비 문건이 정부의 목표를 분명히 보여준다. “빠른 사고 수습을 위해 ‘장례비·치료비·보상금’ 관련 갈등관리”를 보고한다. 시민사회와 온라인 여론의 동향을 낱낱이 추적하고 있다.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비통함을 그저 위기관리 차원에서 대처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가 결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간힘이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0퍼센트가 정부의 이 같은 사태 수습과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대통령과 휘하의 태도에 대하여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극단의 공감능력 부재와 무책임을 감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참극의 조속한 진상 규명과 동시에 책임져야 할 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진정한 애도라 말하는 까닭이 그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바쳐야 할 참 애도는, 이를 악물고 다시는 동일한 참사가 되풀이되면 안 된다고 다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명백한 인재(人災)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을 묻고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천하는 것 말이다.

 

4.

지난 토요일, 대선이 끝난 후 처음으로 거리 집회에 나갔다. 저 무도한 권력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종국에 더 크고 참혹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눈앞에서 어이없이 죽어갈 수 있음이 막연한 상상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하나라도 힘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오싹한 절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단순하다. 그 엄정한 본질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온갖 기괴한 표현으로 팩트를 뒤튼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분식을 하고 위장을 해도 달라질 게 없다. 10월 29일 밤,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난 이 참극은 자연발생적 사건이 아니다. 권력의 극단적 무책임과 직무유기에 의해 발생한 제2의 세월호 사태다.

 

그날 저녁 가설무대 위에 오른 성직자들이 통절한 애도의 기도를 드렸다. 길바닥에 주저앉은 촛불 물결의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흐르는 어두운 강물의 목소리다. 진실을 숨기지 마라.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 이 강물은 검붉은 색으로 더욱 거칠게 요동치며 땅 밑에서 흐를 것이다.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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