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시선] 어머니날, 엄마가 된다는 것

2022.11.16 06:00:00 13면

 

 

북쪽은 2012년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다. 어버이날은 없고 어머니날을 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주의 대 가정’이라는 사회에서 기초 단위인 가정에 여성역할이 중요했고, 사회갈등 해결에 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61년 11월 16일 제1차 전국 어머니 대회가 있었다. 대회에서 여성을 가정과 사회를 돌보는 일군으로 호명했다. 만일 여성이 없었다면 전쟁의 폐허에서 오랫동안 머물었을 것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웠고,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고 공부시키고 직장생활을 했다. 인구가 많아지자 산아제한을 하면서 두 명 이상 아이를 키우지 말라고 했다. 인구가 적어지니 이번에는 아이를 낳으라고, 많이 낳고 잘 키운 여자는 ‘모성영웅’ 칭호를 주었다.

 

사회와 가정일을 하면서 살아온 여성은 강하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더욱 강해졌다. 한 달 꼬박 일해서 하루도 먹고살기 힘든 월급과 배급을 기다리지 않고 장마당을 개척했다. 도시 주변에 있던 농촌시장을 시내 중심으로 이동하고 확장시킨것도 여성이다. 여성, 어머니들이 거미같이 커다란 배낭을 지고 전국으로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어머니날은 여성이기에, 엄마이기에 희생했던 모든 것이 포함된다. 여성과 어머니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으며 겪었던 수난과 고통, 지금도 지속되는 아픔도 포함이다. 어려운 시기 겪었던 고통을 트라우마로 평생 지고 사는 북한이탈주민 모두 포함이다. 국가는 참고 견디면 보다 나은 사회를 약속했다. 생육하고 번성해야 할 여성들이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 책임이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었는데 무엇을 더 잃을 게 있을까. 오죽하면 고향을 떠나겠는가. 

 

지난 10월에 출간한 북한이탈주민이 쓴 에세이 ‘엄마의 이별 방정식’을 읽었다. 저자는 병마와 굶주림에 있는 사람에게 몰려오는 빈대 군단을 보면서 가난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빈대와의 전쟁에서 약자는 박멸한 힘도, 숨을 공간도 없다. 저자는 가족을 살리려 두만강을 건넜고, 스스로 자신을 한족(漢族)에게 맡겼다. 두 딸에게 보낼 돈을 마련하려 긴 생머리를 잘랐다. 없는 살림에 작은 돈을 보태는 시어머니의 마음에 감동했고 진정으로 그들에 가족이 되었다. 

 

‘국경너머에서 엄마가 기다린다고 했다. 중국 쪽이 어떤지, 무엇이 기다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뜻밖의 일이 생겨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나을 거라 생각한다... 옷은 준비되었지만 공교롭게도 신발만 없었다. 그래서 맨발로 산을 넘었다. 가시가 찌르고 돌에 부딪혀 피가 났지만 아픈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와 만났다. 그리고 함께 중국을 가로질렀고 또 한국으로 왔다. 이제 우리는 엄마와 함께 산다’ 저자의 딸이 쓴 일기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분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러면 가을 서리에 이슬을 머금은 국화꽃 한 송이가 자세히 보인다.

위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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