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산업화…한국 근현대디자인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2022.12.05 10:22:34 16면

국립현대미술관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한국 근현대디자인 태동 조명
국가재건시기 미술과 산업의 관계 살펴
포장·책표지·도안 등 다양한 형태 디자인 작품 망라
한홍택, 이완석 작가 기증 작품 및 기록 첫 공개

 

 

“우리의 생활 주변에도 일상 미술하는 ‘데자이나’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쓰고 아끼고 하는 물건들이 데자이나의 손을 거쳐 제품화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하겠다. 알맞은 틀에 좋은 그림을 바라보고 ‘이것이 좋은 그림이며 예술이다’라고 느끼듯이 좋은 옷 무늬의 옷감을 본다든가 좋은 도안의 찻잔을 보고 우리 주변에 생활하는 미술이 있다는 것을 느껴볼 만한 정서는 가져야하겠다” (한홍택, ‘데자인, 문화와 생활의 미화: 인쇄된 종이조각 한 장도 문화의 척도’, 1958)

 

‘디자인(design)’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 도안, 산업미술, 생활미술, 응용미술, 장식미술 등과 같이 번역된 어휘가 뒤섞여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한홍택과 이완석 등 지금처럼 미술과 디자인이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되기 이전, 분야를 넘나들며 한국 디자인계 발전을 이끌었던 이들이 있었다.

 

지난 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전시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는 지난 2021년 기증·수집된 한홍택(1916~1994)의 작품과 기록, 그리고 2022년 기증된 이완석(1915~1969)의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디자인의 태동과 전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이 땅에서 이뤄졌던 디자인의 실물들을 한자리에 펼쳐봤다. 한국 디자인 역사를 기술하는 아주 중요한 전시”라며 “어르신들은 옛 젊은 시절이 떠오를 것이고, 어린이들은 마치 동화나라에 와본 것처럼 이색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홍택, 이완석 등은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단체인 조선산업미술가협회(현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이하 산미협회)의 창립을 주도했다. 산미협회는 ‘산업미술’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의하고, 불모지였던 한국 디자인계 발전에 기여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한홍택의 기록부터 산업미술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제안과 실험을 엿볼 수 있는 포장, 책표지, 도안 등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 작업들이 전시된다.

 

또한, 1950~1960년대 도시 풍경 속 간판, 옷차림 등이 기록된 사진 및 영상을 통해 국가재건시기 우리 생활상에 녹아있는 당대 시각문화를 다각도로 살핀다.

 

 

1부 ‘미술과 산업: 산업미술가의 탄생’에서는 한홍택의 일본 유학시기를 비롯해 조선산업미술가협회의 창립과 해방 전후 다양한 활동을 살펴본다.

 

산미협회는 1946년 5월 창립전 ‘조국광복과 산업부흥전’을 개최하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정기적인 회원전을 통해 ‘산업건설’, ‘올림픽’, ‘관광’ 등 사회적 현안과 시의성 있는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산업미술과 거리가 먼 어린이 동화를 위한 삽화들이다. ‘어린이구락부’, ‘동물만화’ 등을 만날 수 있다.

 

해방 직후 어린이 출판물이 큰 증가세를 보였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어린이들이 많았고, 문인과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좋은 문학 작품을 만드는 작업들이 활발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또한, 초창기 산업미술가들의 활동을 조망하고자 포스터, 장정과 삽화, 광고와 포장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현된 이 시기의 다양한 실천을 함께 소개한다.

 

 

2부 ‘모던 데자인: 감각하는 일상’에서는 전후 사회 복구를 위해 들어온 미국의 원조물자들은 서구식 문화와 물질, 현대적 삶을 지향하는 대중의 욕망을 보여 주는 사물, 이미지, 일상 속 풍경을 담았다.

 

화장품, 술 광고 포스터와 잡지 표지 등에는 여성이 전면으로 내세워져 있는데, 서구적 미인이 주인공으로 다수 등장한다. 보다 개방적인 주체로서 여대생, 일하는 여성, 중산층 주부 등 당시 지향했던 여성상을 알 수 있다.

 

한영수(1933~1999)의 사진에는 정비되지 않은 골목과 상점의 진열장, 손글씨로 만든 각양각색의 간판, 거리의 매대에 놓인 잡지 등 1950~1960년대를 비춘다.

 

대중의 일상 및 기호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일상 속 시각문화를 수집한 김광철의 ‘로고 아카이브 50~60s, 기업의 탄생과 성장’, 장우석의 ‘한글 레터링 컬렉션’을 볼 수 있다.

 

 

3부 ‘정체성과 주체성: 미술가와 디자이너’에서는 미술가와 디자이너,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녔던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한다.

 

한홍택은 ‘한홍택 산미 개인전’(1952)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개인전을 통해 ‘데자인’, ‘디자인’, ‘그라픽아트’, ‘시각언어’ 등 여러 용어를 도입하며 분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자 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현주 학예연구사는 “한홍택은 새로운 명칭을 도입하면서 상표 디자인 정도로만 인식됐던 당시 분야의 새로운 명칭과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화가로 주목받다 산업미술가로서 입지를 확장했던 문우식(1932~2010)의 작품도 소개한다.

 

 

4부 ‘관광과 여가: 비일상의 공간으로’에서는 경주, 제주, 강원도 등 지역을 주제로 제작된 산업미술가들의 관광포스터 원화들을 만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1961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정해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여가문화의 확산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지역 명소로의 여행이 일상이 되던 시기였다. 이를 위한 관광 홍보도 활발히 했다.

 

이때 산업미술가들의 포스터는 일상의 공간에 환상을 더하는 강력한 홍보 수단이 됐다.

 

또한, 국가 간 교류의 장이자 한 국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 장소로 존재했던 관광, 외교 공간을 탐색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발전된 국가의 모습을 선보이고자 했던 반도호텔, 조선호텔, 영빈관 등에 구축된 공간들을 소개한다.

 

 

한편, 전시 기간 중 연계 교육 프로그램 ‘전시를 말하다: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가 진행된다.

 

전문가를 초청해 1950~1960년대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을 비롯해 이 시기 디자인 분야의 변화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정경아 기자 ccbbk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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