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서러운 마음을 달래 준다고?

2022.12.12 06:00:00 13면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는 이런 서예 글귀가 써 있는 큰 액자가 병동 복도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누가 쓴 것인지 낙관은 없으나 다소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병든 사람들의 마음에 꽂히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써 있다.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수는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병원의 간호 서비스는 나름 친절하고 세심한 편이다. 서러운 마음을 어루만지라고 평소에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병들어 아프면 흔히들 인생 뭐 별거 없다느니, 이제 모든 걸 다 내려놓으라느니, 앞으로는 몸만 생각하고 건강만 염려하며 살라느니, 일은 다 그만두라느니 하는 소리를 한다. 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다. 그게 다 빈 말이라는 것을. 영어로 얘기하면 ‘bullshit’, 한 마디로 개소리라는 것을.

 

자본주의에서는 아프다는 것도 매우 계급적인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플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일에서 은퇴해서, 건강만 생각하며 말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플 시간이 없다. 노동을 멈출 수가 없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가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신이 밥벌이를 위해 일을 나가야 한다. 아프면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그 ‘아프면 소용없는 일’이 진정으로 ‘소용없어지려면’ 바로 돈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아플 자격이 없다. 병에 걸려서는 안된다.

 

일산에 있는 병원의 저 글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적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한국은 비교적 의료서비스, 건강보험이 잘 돼있는 나라이고 그래서 늘 병원에서 퇴원을 하거나 진료를 받고 나올 때마다 진료비, 입원비의 총액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우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종종 MRI나 초음파의 건강보험 급여 체계를 조정한다느니 해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 같고 아니면 아예 공공 병원의 민영화 여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의 여론은 지금의 건강보험 서비스를 보다 더 확대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니냐는 쪽일 것이다. 한번 앞으로 간 것을 뒤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고스톱 용어로 ‘낙장불입’, 윷놀이 용어로 ‘빽도 불가’이다. 그러다가 망한 나라가 대처 시절의 영국이다. 오죽했으면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환호성을 질렀을까.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세상 모든 근심을 다 없애 주지는 못해도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이라도 달래 줄 수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서러운 마음을 달래 주기는커녕 세상 근심을 더욱더 많고 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최근 벌어진 화물연대 파업 사태와 대통령과 정부의 업무 복귀 명령, 그에 따른 파업 철회에도 불구하고 핵심 주동자에 대한 엄정한 법 적용 원칙을 천명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은 정치를 하려 하지 않는구나, 오로지 통치를 하겠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든다. 다소 간교한 한 우파 평론가는 윤석열 정부의 법과 공정의 정신을 보여 준 사례여서 지지율이 올랐다고 자평했지만, 그 원한의 함성이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무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힘으로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좌에서 우로 전향했다고 내세우고 다니는 한 의원도 방송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 대처처럼 대처를 잘했다며 낄낄댄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러운 마음이 더욱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려고 다들 이렇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의 얼굴을 잃어 갈 때 그 사회에서는 파국이 벌어지는 법이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가 이런 문제를 더욱 노골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장연은 지하철 정거장 지연 점거 농성을 이어 갈 것이고 서울시는 그런 구역은 무정차 통과를 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질 것이다. 서울시나 정부가 머리를 싸매고 해결할 생각보다는, 장애인과 시민의 대립으로 프레임을 짜려고 하는 얄팍한 정치적 술수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노-노 갈등을 유발시키는 셈이다. 전장연의 시위는 결국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이고 이에 대한 예산 문제이니만큼 해결의 실마리는 있을 것이다. 정부 권력을 쥔 자들이 ‘내 밑으로 다 숙이고 들어 오라’는 식의 태도를 일관해서는 민란을 유도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는다. 정치가 이렇게 돼서는 안될 일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영화 중에 ‘와즈다’란 작품이 있다. 2012년 영화이다. 10살 된 어린 소녀가 동네 친구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하자 엄마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고 아이를 그러지 못하게 하려는 내용의 영화다. 10년 전 사우디에서는 여성들이 이동권이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됐든 자전거가 됐든 직접 이동의 물체를 운전할 수가 없다. 남자가 해주는 것을 타야 했다. 강고한 회교 율법인 ‘와하비즘’때문이었다. 지금의 한국이 10년 전 와하비즘의 나라인가. 이동권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는가. 사람들이 대통령을 뽑은 것은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통치가 아니라. 통치는 김정일의 북한이나 시진핑의 중국, 푸틴의 러시아 같은 곳에서 쓰여지는 단어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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