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시선] 고향에 12월은 춥다(2)

2022.12.16 06:00:00 13면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 볼이 빨갛게 얼어 든다. 아무리 추워도 영하 30도씩 오르내리는 겨울을 살았기에 지금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고 살았던 사람이 눈 속을 뒹굴러도 끄떡없을 패딩을 입고 춥다고 야단이다. 춥지도 않을 추위가 춥다고 생각되니 따뜻한 남쪽에 적응되었나 싶은데 다시 보면 추위보다 마음이 추울 때가 있다.

 

시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북한이탈주민 모두는 시인이다. 돈을 많이 벌어 가족에게 보내고 현재 삶에도 충실하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남쪽 사람들처럼 좀처럼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시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 생기는 것도 아니요. 아프니 그냥 써 본 것이 어느 날 시가 되어 시린 마음을 다독인다. 시를 쓰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고 누군가 읽어주고 공감한다면 기쁨은 배가되고 살아갈 이유가 된다. 

 

북한이탈주민 이지혜 씨는 시를 써본 적 없다. 그는 십 년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맞이하는 새해가 두렵다. 떠난 것이 불효가 되어 못 견디게 그리운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보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 편지를 쓴다. 다섯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얼음산이 막혀 있는 것도 아닌데, 가로지른 분단선 하나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혹하고 야속하다. 그리움을 담으면 꿈속에 엄마가 꼭 안아준다. 엄마품이 따뜻하고 포근해서 온기로 추위를 견딘다. 행복을 멀리한 적 없고 이별을 가까이한 적 없으나 돌아갈 수 없는 고통이 평범한 사람을 시인으로 만든다. 그렇게 그리움을 한 자 한 자 새겨 시를 짓는다. 

 

북한이탈주민은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고 잊기에는 인연이 남아 있다. 헤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잊혀질까 두려워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혼란한 사이를 탈출해 완전한 남쪽 사람으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아직 사이를 벗어나지 못해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시를 짓는다. 시린 마음에 온기를 유지하려 문장을 만든다. 차가운 시선이 머무를 때 시와 문장을 만들며 마음을 덥힌다.

 

고향에 12월은 춥다. 동지섣달 한 허리를 베어 먹을 만큼 춥다. 무너지게 내리는 눈사태에 연탄불에 모여들어 배가 볼록한 도루메기를 구워먹었다. 오그랑 팥죽을 먹으며 긴나긴 겨울을 보냈던 시기도 있다. 따뜻한 기억은 가족과 함께 있었을 때이고, 차가운 기억은 상실했을 때 마음이다. 자식을 두고 온 어미와 어미를 잃은 자식이 괜찮다고 아프지 않다고 느낀다면 가을과 겨울 사이를 벗어난 사람이다. 

 

시를 써본 적 없는 사람이 시인이 되어 아픔을 노래할 수 있다면 다가오는 새해가 두렵지 않겠다. 고향이 추우면 따라서 마음도 시리다. 남북관계가 얼음이 되면 따라서 마음도 얼어 든다. 북쪽도 따뜻한 남쪽처럼 등 따시고 배부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추위에 당당하겠다. 주저 없이 가을과 겨울 사이를 벗어나 새해를 맞을 수 있다.

위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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