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칼럼] 장애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나라

2023.01.17 06:00:00 13면

 

1.

몇 년 전 텍사스에 교환교수를 다녀왔다. 오스틴 북쪽, 집 근처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 주차장의 승용차 뒷범퍼에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DISABLED & PROUD’. 장애가(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레이건 집권 이래 30년 이상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수탈을 통해 재화가 극단적으로 최상층에게 쏠렸다. 경제학자 피케티가 주도하는 《세계불평등보고서(World Unequality Report)》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전체 가구 순자산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한 비중이 70.7퍼센트다. 반면에 하위 50퍼센트는 고작 1.7퍼센트에 불과하다.

 

불법이민자, 사회적 약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무덤 위에 쌓아 올린 바벨탑이다. 인종차별과 총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암종(癌腫)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이 나라가 부러운 것이 있었다. 주눅 들지 않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존재를 별나게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법적, 제도적, 문화적으로 최우선시하여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였다.

 

2.

새해 이튿날 아침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동권 보장과 탈 보호시설 지원, 중증 장애인 고용 대책 등을 호소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 활동가들이 서울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탑승 시위’를 시도했다.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의 단 0.8퍼센트만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탑승을 막아섰다.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다쳤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 시위의 불법성을 강조한다.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대상으로 6억 145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다. 서울시의 냉혹한 대응은 (어쩌면) 예상된 바다.

 

문제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이다. 전장연 시위에 대한 지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 뉴스 댓글 란에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출근길 불편에 대한 저주와 장애인에 대한 조롱이다. 그 가운데 가장 심장을 베는 것은 “집에서 기어 나오지 말라”는 표현이다.

 

3.

자동차, 건설 공사, 고층건물, 산업현장 등 곳곳에 가득한 문명의 이기들. 현대사회는 오히려 이 때문에 극단적 위험사회가 되었다. 우리나라 장애인 가운데 후천적 장애인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가. 88.1퍼센트다. 당신과 당신 자식도 내일 갑자기 그렇게 될 수 있다. 이점에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인 것이다.

 

복지 선진국 시민들은 왜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면서 장애인 편의를 최우선시 하는 것일까. 나도 예기치 않게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자각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단순한 이타심의 발로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치원 때부터 그러한 역지사지의 공감을 끊임없이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도 학교에서 교육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 각자도생의 정글 속에서 성장하면서 성적, 종교적, 인종적, 신체적 소수자를 대하는 어두운 독기에 물들어버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약한 존재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몸에 배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게 있다 한다. 장애인들이 신기할 정도로 길거리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기 나라에 비해 장애인들이 없어서 그러냐고 묻는다. 차마 답하기가 힘들다. 가장 초보적인 장애인 이동권조차 없기 때문에, 모두들 집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해서 그렇다는 진실을 어찌 털어놓겠나.

 

4.

다시 미국 이야기를 해보자. 이 나라의 장애인 권리는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니다. 처절한 싸움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장애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 『나는, 휴먼(Being Human)』이 증거다. 이 책은 생후 18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휠체어를 탄 그녀의 역정. 그리하여 사회적, 제도적 편견을 부수고 오늘의 장애인정책을 얻어낸 투쟁의 보고서다.

 

‘그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도로로 뛰어들었고 심지어 연방정부 건물을 24일 동안이나 점거하여 《재활법 504조》 시행규정을 통과시킨다. 그 기나긴 싸움에 굳센 연대의 힘으로 시민들과 언론이 함께 했다. 장애를 지녔든 아니든 모두가 똑같은 존엄을 누려야 한다는 국가적 합의는 한발 한발 그 같은 과정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은 허울 좋은 구호일 뿐. 권력이든 돈이든 그것을 가진 자들만이 절대 승리자다. 가난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이는 냉담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어디 장애인정책뿐이랴.

 

이태원 참극과 그것을 둘러싼 광기를 보라. 저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그악한 자들이 권력 핵심에, 국회에,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참사 현장 근처에 판을 치고 있다. 자식 빼앗긴 어미아비까지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다. 한 뼘 땅 밑에서 자기와 가족을 삼킬지도 모르는 괴물이 그르릉 대며 숨을 쉬고 있는데.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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