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도시기행]  화학공업도시 함흥-흥남의 역사적 기원

2023.01.17 06:00:00 13면

 

 

함흥은 동해안에 위치한 화학공업도시이다. 흥남은 함흥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져 행정구역상 함흥시 흥남구역에 속한다. 함흥은 1416년 함주라는 함자에 흥하라는 의미에 함흥이라는 지명을 가졌고, 흥남은 1927년 질소비료공장이 생기면서 함흥에 남쪽이라는 의미에 흥남이라는 지명이 새로 태어났다.

 

함흥은 조선시대 함경도 행정중심지로 조선을 일으킨 전통적인 도시이며 흥남은 일본인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에 의해 생겨난 근대적 도시다. 1943년기준 함흥인구는 12만명, 흥남인구는 16만명으로 1960년 함흥-흥남이 통합하면서 평양 다음가는 제2도시로 부상했다. 함흥면적(2003년기준)은 556㎢이며 현재 인구는 83만7000명(2013년 기준)으로 추정한다. 함흥-흥남 행정구역은 분리와 통합을 거치면서 변화되었다.

 

물의 길을 보면 랑림산맥과 함경산맥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성천강으로 흘러들어 함흥평야를 적신다. 성천강과 호련천 물줄기는 경흥천, 금사천 등 지류와 이합집산 하면서 큰 물길로 동해로 흐른다. 풍부한 강수량과 교통의 편리함, 지하자원은 함흥-흥남이 화학공업도시가 된 이유이다.

 

반룡산(동흥산)은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으로 성천강과 호련천 사이에 걸쳐 있고 크고 작은 산들이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개마고원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과 동해바다 바람은 차고 강해 이것을 비유해 ‘함흥내기’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웅장하고 장중한 아름다움을 시(詩)로 전한다.

 

‘하늘이 함흥을 지어내어 북방을 웅장하게 하니 울울총총한 아름다운 기운이 옛 南陽(남양) 같다. 청산은 모두 공수하였는데 名樓(명루)가 나왔고, 綠水(록수)는 돌아 통하니 市의 城郭(성곽)이 길더라’

 

 

조선시기 가장 긴 목조 다리로 유명한 만세교는 성천강을 가로질러 함주와 연결되어 물류교통에 중심지 역할을 한다. 만세교는 1905년 러시아군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30년 철근으로 지었고, 1959년 다시 축성하면서 성천교로 했다. 다리밟기 풍속으로 정월대보름에는 긴 다리를 걸으면서 호두나 잣, 엿을 먹으며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흥남질소비료공장이 생겨나기 전 운전면은 조선가옥 200여 채가 있는 작은 농어촌 마을이었다. 흥남이라는 지명을 얻기까지 서호진항으로 유명했다. 서호진항은 전국적으로 명태어획량이 가장 많은 황금어장이다. 명태와 고등어, 가자미, 도루묵이 많이 잡히기 때문에 저장하고 가공하는 시설이 발달했다. 명태김치, 가자미식해, 명란젓, 창난젓은 함경도 특산이다. 

 

함흥은 조선을 일으킨 이성계가 살았던 본궁을 비롯한 함경도관찰사가 행정사무를 보았던 선화당과 옛 성터가 남아있다. 흥남은 물의 길을 따라 생겨난 근대적 화학공업도시기원이다.

위영금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